동사서독 [383625] · MS 2011 · 쪽지

2017-05-18 12: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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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17금] 왕자지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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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지(王字之)는 고려 예종 때의 문신 관료다. 그의 조상은 고려 건국 때 활약했던 왕유로 원래 성은 박씨였으나 공을 세워 태조 왕건으로부터 왕씨 성을 하사받고, 자기 딸을 왕건의 후궁으로 들였다(예화부인 왕씨). 왕자지는 왕유의 현손(손자의 손자)으로 알라져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왕자지의 어릴 적 이름은 왕소중(王紹中)으로 부친 혹은 조부의 작명 센스가 엿보인다. 이 세상에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내 이름이다.


음서를 통해 서리로 출사한 왕자지는 헌종 때 이자의의 난에 공을 세워 숙종에게 발탁된다. 그의 매부 왕국모가 계림공(훗날의 숙종)의 휘하에 있었는데 이자의의 난 때 계림공의 명을 받아 이자의를 죽이는 데 앞장섰다. 왕자지는 그 때 궁궐 문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 공을 인정받아 훗날 계림공이 왕위에 오른 뒤 내시로 발탁된다(뭐?).


왕자지가 출세를 위해 자기 이름을 싹둑 잘랐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결코 자기 이름을 왕땡땡으로 고치는 짓을 하지 않았다. 고려시대의 내시는 왕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필하는 최측근 관료로 조선시대의 내시와는 개념이 다르다. 그렇게 숙종에 의해 발탁된 왕자지는 이후 예종 때 윤관을 따라 여진 징벌에 참전하면서 공을 세우고(이때 친해진 사람이 소드마스터 척준경이다), 송에 사은사로 갔다가 대성악을 고려에 들여오는 등 다방면에 걸쳐 활약하지만, 안타깝게도 정규 교육과정에선 그의 이름 석 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사극에도 안(못) 나온다.


벼슬은 종2품 추밀원사, 참지정사 등의 자리에까지 오르고 딸을 이자겸의 아들 이공의에게 시집 보내 당대의 권신 이자겸과 사돈을 맺는 등(근데 정작 본인은 이자겸의 사촌 이자의의 난을 진압하면서 벼슬에 올랐다) 해피한 인생을 살다가 1122년에 죽으니 향년 57세, 이자겸이 난을 일으키기 4년 전이다. 본인은 험한 꼴 안 보고 죽었지만 딸 인생이 좀 갑갑해졌다.


한편 금관가야의 제6대 왕 좌지왕(坐知王)이 이 사람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카더라.






...

간만의 한국사 뻘글입니다. ㅎ


한국사에서 문벌귀족에 대해 배울 때 왕자지도 같이 배우면 더 흥미로웠을 텐데 말이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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