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학벌 블라인드 논란에 대해: 그들은 어째서 불타는가?
제목 그대로 글이 좀 깁니다. 추천글에 이원준 강사님의 글을 보고 느낌이 와서 씁니다. 편하게 읽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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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 우리는 언제나 서열을 찾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늘 쓰는 일상품에서, 큰 맘 먹고 고르는 고가품에서, 그리고 무형의 교육에서, 어디서든 등장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는 한번에 모든 것을 취할 자원이 없고, 단 한 번의 기회에서 제일 나은 선택을 하려 합니다. 이때, 그 "최선의 선택"으로 다수의 인정을 받은 것들이 있으며, 이를 인정받은 정도로 나열한 것이 서열입니다. 서열은 우리가, 우리의 필요 때문에 만들어 냈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했듯, 서열은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모든 서열에 대해 분노하고 있을까요? 모든 제품이 평등하게 선택되어야 한다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교육의 서열화에 대해서 그토록 화를 내며 평등을 주창할까요? 그 이유는, 그것이 본인에게도 해당하는 서열, 즉, 자기 자신이 서열화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는, 내가 "서열"의 안쪽에 있으며, 이에 더해 '내 위에 누군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무척이나 바위 같아서, 자기 일이 아니면 보통 큰 주의를 두지 않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나 살기 바쁜데 어떻게 다른 것에 신경을 쓰겠습니까. 열심히 살면서도 다른 일에도 관심을 두시는 분은 마음이 따뜻하시거나 열정으로 타오르는 분이실 겁니다. 그러나 어떤 대상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으며, 그것이 명백한 위협일 경우, 바위는 순식간에 녹아버리고 격렬한 불꽃이 그 자리에 남아 위협을 제거하려 합니다. 이때 그 위협은 교육의 서열화이고, 사람들의 반응을 불꽃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불꽃이 아니고서야 설명이 되질 않습니다. 지금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뉴스란을 보세요. 아직 불타고 계시는 분들이 수두룩합니다.
어쨌든, 사람들이 교육의 서열화에 대해서 격렬하게 불타오르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불타고 있을까요? 분명히 불이 붙은 이유가 있겠지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 첫 번째 불씨는, 사람의 마음에 내재한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특히 '누군가의 위에 서고 싶다'는 욕망 말입니다. 이 욕망은 지금도 어디선가 방출되고 있습니다. 가까운 곳을 둘러보세요. 어딘가, 누군가는 다른 이에게 '갑질'을 하고 있을 겁니다. 이런 행동으로, 타인의 위에 서 있다는 기분을 느끼는 것으로 사람은 정복감과 오묘한 만족을 얻습니다. 사람들은 갑질을 참 좋아하지요? 그러나 이런 정복감과 만족은 그 '위에 서 있는 사람'만이 느끼는 것입니다. 상황으로 돌아가서, 아래에 깔린 사람의 기분을 생각해 봅시다. 그런 욕망을 이루지 못한 반대급부로, 그 사람은 상대에 의한 위협과 굴욕감을 느끼고, 그 상황을 벗어나려는 방법을 시도할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시도. 이것이 그들이 불타는 이유입니다.
교육은 한국인에게 있어 인생의 절반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직 영향을 받고 계시는 분은 인생의 거의 전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그렇기에, 교육의 서열화는 곧 사람을 서열화하는 것과 동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중학교가 좋다더라, 어느 고등학교는 대학을 잘 보낸다더라, 그리고 서연고 서성한부터 내려오는 대학 서열까지. 이런 교육의 서열화는 곧 우리에게 있어 인간의 서열화로 여겨지고, 자신이 서열화되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방법으로 서열 그 자체의 파괴를 선택한 것입니다.
위에서 제가 서열의 파괴를 방법으로써 선택했다고 했었지요? 사실 생각해보면, 작금의 사태는 파괴라기보단 회피에 가깝습니다. 서열을 파괴한다는 것은 곧 그 서열의 대상이 되는 것을 다시 부수고 어떤 형태로든 재조립하여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미 있는 서열을 그저 무시하겠다는 것은 파괴보다는 회피일 겁니다. 서열이 나쁘다고 생각하면서, 이미 누군가 쌓아올린 노력을 완전히 무시하고 그저 기계적인 숫자로 바라보겠다는 것은, 그리고 그런 방법으로 도달하는 종점은, 회피하고 기피해서 책임을 면피하기 위한 도피자들의 대피소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서열화는 피할 수 없습니다. 바닥이 있으면 천장이 있고, 아래가 있으면 위가 있습니다. 사람 둘이 모이면 앞뒤로 세우고, 셋이 모이면 줄을 세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이 서열 안 객체 간의 격차를 위쪽으로 당기고 줄여 다들 어느 정도는 높은 수준을 이룰 수 있게 하는 것이지, 이미 있는 것을 장막으로 가리거나 위쪽을 잘라내는 것이 아닐 겁니다.
눈을 감고 진흙에 손을 넣어 보석을 골라내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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