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냐넌? [846347] · MS 2018 (수정됨) · 쪽지

2019-02-11 22:36:34
조회수 7,901

장수생이 전하는 짝사랑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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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비슷한 썰들이 많이 보여 필자도 한 번 써본다.






4수 중에 같은 수업을 듣던 3-4명이 카페에 모여서 수다를 떨은 적이 있거든. 어쩌다보니 다른 아이들은 빠지고 재수하는 여자애랑 단 둘이 앉아 있게 되었어.


내가 그 때 웃으라고 했던 진담이 "이야... 여자랑 단 둘이서 카페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게 한 1년 반만인 것 같은데." 였어.(물론 이 여자애가 짝사랑 상대는 아니야.)


대부분의 수험생이 나와 같이 하루하루를 똑같은 루틴에 갇혀서 이성과 교감도 거의 없이 수험 생활을 하게 돼. 그러다보면 자연히 딴 생각이 날 수밖에 없고, 작은 감정도 몇 십배로 증폭되게 돼.


게임도 수험 생활 때하면 더 재밌듯이 이 짝사랑이라는 것도 수험 생활 때 걸리면 답이 없는 거야.


근데 짝사랑이라기 보다는, 사실 발정에 가깝다는 게 내 의견이야 ㅎㅎㅎ





이런 썰들 보면 대개 상대의 외모에 홀려 짝사랑이 시작되는데 나도 다르지 않아.


내가 원래 자습관 다니면서 여자 얼굴을 보고 다닌 적이 없거든? 정말 관심이 없어서 그랬어. 내 팔자에 무슨 여자 얼굴을 보며 품평을 하고 있어.


거진 시선을 반 쯤 내리고 다니느라 담당 선생 빼고는 사람 얼굴 자체를 거의 안 봤어.


근데 해당 자습관에 몸매가 호리호리한 여학생이 3명 있었다? 몸매가 거의 비슷해서 다리만 봐서는 구별이 안 갔어. 그 탓에 나는 그 세 명을 동일인으로 생각하고 3개월을 지냈어 ㅎㅎㅎㅎㅎ


그런데 어느 날, 청바지를 입은 A가 지나가고 곧바로 똑같은 몸매를 한 B가 지나가는 거야. 그제야 그 셋이 다른 사람임을 눈치챘지. 해서 얼굴이 어떻게 생겼나 무심코 B를 올려봤어.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꽂혔지.






기본적으로 그 아이는 호리호리한 체형이었고, 미인이었지만 수수한 느낌이 났어. 내 이상형에 정확히 들어가는 스타일이었지.


진짜로 눈이 돌아가는데, 가만히 앉아 생각하니 확실히 사랑과는 거리가 먼 감정이더라고. 마냥 발정이라 표현하기도 그렇고, 하도 오래 스스로를 가두고 지내다보니 사람 온기가 그리워졌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았어.


심리적으로 꽤 파문이 컸지.


덕분에 스스로 자괴감 들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행위를 하나 했는데, 바로 지나가다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야말로 벼락처럼 고개를 휙 돌려버렸던 거야. 아니 초딩도 아니고 무슨 ㅎㅎㅎㅎ 지금 생각해도 머리를 쥐어뜯고 싶다.


심지어 본래는 수염도 10일에 한 번 씩 정도 깎고 다녔는데 그 후로 이틀에 한 번 씩은 수염 정리 하고 털 정리도 했던 것 같아. 정신 나간거지.


뭐, 이 아이가 '10월 중순'쯤에 자기 졸립다며 '에어컨' 틀어달라고 자습관 담당 선생한테 요구했던 것 생각하면 얘도 썩 정상이 아닌 것 같긴 한데 ㅎㅎㅎㅎㅎ 어쨌든 그런 거 몇 개가지고 확 안 깨더라.






물론 짬밥 좀 먹었다고 대처법은 나름 있었어. 연심을 역이용하는 거지.


우리가 책을 볼 때 마지막 한 페이지 남겨 놓거나, 혹은 운동 할 때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 놓고 이걸 마저 마무리해야 할 지 갈등하잖아? 그 때 짝사랑 상대를 떠올리며 내가 지금 눈앞에 주어진 과제를 끝냄으로써 보다 완벽해진 모습으로 그녀를 만나야겠다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거야.


효과 좀 있어. 의지가 떨어져 종이 한 장 차이로 해내지 못할 일을 해내는 거지.






당연히도, 항상 좋은 쪽으로 짝사랑이 작용한 건 아니야. 내가 자주 복도 나와서 공부했는데 얘도 자주 나왔거든? 진짜 같이 서있는데 겁나 거슬리더라 ㅎㅎㅎㅎ 옆에 서 있는데 신경이 자꾸 그 쪽으로 가고 침 넘기는 소리도 신경이 쓰였어. 정말 짜증이 났지. 스스로에게도 짜증나고 상대 여자아이한테도 짜증이 나고.


결론을 좀 내자면, 수험 생활이 끝나고 한 달 정도 지나니 짝사랑 상대에 대한 감정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마냥 사라졌어. 진짜로 내 상황이 힘드니까 가벼운 연심도 수십 배로 증폭되었던 것 같아.


그러니 너희들도 그 짝사랑/연심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기왕이면 좋은 쪽으로 활용해봐. "이번 수능을 잘 봐서 서울대에 합격하고 고백하겠어!"같은 식으로 의지로 변환시키라고. 좀 오글거리긴하는데, 그렇게밖에 쓸 수가 없더라.


괜히 고백해서 서로 수험 생활 망치지는 말고. 주변에 여자 사귀고 잘 되었다는 새끼는 정말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






근데 궁금하긴 하다. 걔 이름이 하연이었던 것 같은데 수능을 잘 봤을 지 말이야. 국어 약하다는 소리했던 거 보면 조졌을 것 같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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