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icS [463916] · MS 2013 · 쪽지

2020-04-14 21:4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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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생각나서 써 보는 갓봉열센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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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수능은 내 기억으로 솔직히 좋은 기억은 없으나 불수능 논란이 많았다. 그때만 해도 만점자 1프로 정책 하던 시절인데 국수영 모든 영역 중에서 국어A 정도 빼고는 1프로 가까이도 못 갔었으니 말이다


 특히 이과수능은 수학 영어가 연속으로 후려치다보니 이과인들은 무덤을 세워야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수학B의 12면에 나온 문제는 꽤 오랫동안 전설로 남아있었고 28+2 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쓰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실제로 그 해 수학B는 92점이 정말 무더기로 나왔던 걸로 기억


 영어B도 응시자 수가 줄어드니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서 2011 수능을 소환시켰는데, 내가 쳐본 영어 시험 중에 14 영어B가 제일 어렵다고 자신한다. 난 설마 11 수능보다 빈칸이 어려울 수 있을까 했는데 시발


 아무튼 수학B랑 영어B가 만점을 못 받게 시험을 내는 바람에 그 해 이과수험생 중엔 갓봉열 센세가 유일한 만점이었다

 

 이과의 유일한 80스케일 수험생.. 선택과목도 물1 생2? 였으니 설대 원서 자격도 됐다. 유일한 만점자로서 설의는 따놓은 당상일거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고대의대는 수시에서 갓봉열을 탈락시키면서 대승적 차원에서 갓봉열을 놔주었고.. 당시 오르비언들의 찬사가 생각난다


 그런데 너무 당연하게 설의가 될 거라고 생각들 했던 갓봉열 센세는 설의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만다.


 14 수능부터 탐구가 2과목 선택으로 바뀌었는데 이때 변별력을 잡겠다고 한 게 과탐에 쌩불을 질러 놓은 것이다


 지금 과탐에 고생하는 수험생들은 14 수능 관련 인사들이 엄청 원망스러울 것이다. 과탐이 사람 치는 시험이 아니게 된 건 이때부터였다. 더불어 화학이 정신병 과목이 된 게 아마 이쯤부터였을듯


 그래서 당시로선 당혹스러울 정도의 불보정을 상위권 대학들이 쌔려박았는데, 갓봉열 센세는 하필 그해 만점자가 3프로였던 생명과학2 응시자였고.. 결국 과탐에서 점수 손해를 크게 보고 만다. 그때부터 2과목 선택은 많은 용기가 필요한 선택이었으나 그 선택이 갓봉열 센세를 옭아맨 것이다

 

 갓봉열 센세는 물리1에서도 백분위 점수를 손해보면서 만점자지만 환산점수는 백분위 점수를 최대 3점을 손해본 만점자가 됐다


 아무튼 그때 갓봉열 센세가 설의에 떨어졌다는 소식은 오르비언들에게 큰 충격이었고.. 일부는 당시 수능 제도에 형용할 수 없는 공포를 느끼게 되는데 지금도 그 공포는 현재진행형이다. 2과목 선택 ㅅㅂ


 그 뒤로 오티에서 여장까지 하며 인싸력을 뽐내던 갓봉열 센세는 반수한다는 소문도 돌긴 했지만 결국 연의에 계속 다녔다고 한다


 이제 예과 2년, 본과 4년도 지났으니 갓봉열 센세는 정확하게 말하면 연의 졸업생이겠지.. 그때 이과 수능의 승리자였던 센세는 지금 어디서 뭘하고 있을까? 수능 이야기로 밤을 지새웠던 그 시절이 그렇게 ㅈ같았는데 지금은 그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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