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생들에게 바치는 글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수험생 여러분에게 수고하셨다는 말부터 하고 싶습니다. 해마다 입시 정책이 바뀌는 건 이제 그러려니 싶은데, 올해는 코로나 크리까지 터졌군요. 덕분에 학교에 소속감을 전혀 느끼지 않은 학생들의 반수러시도 어마어마했고요. 여타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정시 지원이 카오스가 될 가능성이 다분한데, 이때 여러분이 한 번쯤은 읽고 고민해보셨으면 하는, 그리고 제가 대학교 가기 전에 누가 말해줬으면 좋겠다 싶었던 내용을 몇 자 적고 싶습니다.
저도 많은 내용을 알지는 못합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그냥 여러분보다 학교를 먼저 들어간 것에 지나지 않은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지를 무릅쓰고 여러분께 주제넘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것처럼, 과거의 제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읊조라는 식으로 말해보려 합니다.
이전에 쓴 글을 조금씩 가공하여 주저리주저리 적으려니 양해 부탁드리길 바랍니다.
1. 폼나는 직업은 누구나 하는 것이 아니다 / 플랜B의 중요성
대학교 입학하기 전에 저는 막연히 행정고시를 보거나 외교원을 준비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간지나잖아요. 직업을 갖게 된다면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직업을 갖고 싶었고, 그 중에서도 이왕이면 폼 나는 직업을 갖고 싶었습니다. 모든 1학년들의 머릿속에는 아마 비슷한 내용으로 차있을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수능을 잘 봤든 못 봤든, 나중에는 로스쿨을 가거나 행시를 쳐서 사무관이 되거나 외교관이 될 거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한국사 교양 첫 수업 때 교수님이 임의의 새내기 3명을 지목하여 자네 꿈이 뭐냐고 물어봤을 때 세 학생이 차례로 검사 외교관 판사라고 대답했을 때 저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들 이렇게 생각을 하는구나. 어떻게 이렇게 다 천편일률적으로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대입 자소서에도 다 비슷비슷한 이야기로 채우지 않았을까. 12년간 공부를 열심히 해왔으니 앞으로도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어떻게든 먹고 살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저 뿐만 아니라 모두가 했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충격받았던 것은 새내기 때 학교 열람실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제가 다니고 있는 학교는 지하에 꽤 큰 규모의 열람실이 있습니다. 시험기간도 아닌데 츄리닝 차림으로 초췌한 모습을 한 채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바로 고시생들이었습니다. (혹자는 CPA는 고시가 아니라며 폄하하겠지만 어쨌든 어려운 시험이므로 편의상 고시생으로 퉁치겠습니다) 거의 하루 종일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픈 내용들을 보고, 1년에 단 한 번 있는 시험으로 승부를 보려고 하니 그것 참 힘들어보였습니다. 물론 붙었을 경우에 그만한 대가가 따라오긴 하지만, 적어도 1학년 때의 제가 생각하는 캠퍼스 라이프를 전혀 즐기지 못한 채 (고3 때 공부는 다 한거라 생각했으니까요) 공부하는 걸 보니 숙연해졌습니다.
5급 공채(외교원 포함)의 경우 전국적으로 300명 정도가 붙습니다. 1차 접수 기준 경쟁률이 3X:1이고, 1차 시험은 대략적으로 7배수로 뽑으니 2차시험장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1차시험을 보는 한개 고사장 중 대충 한 라인 정도 비율입니다. 2차시험을 붙은 사람들 중에서 최종적으로 사무관이 되는 사람은 그 라인 중 한 명 정도 비율이겠네요. 나름 소싯적에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이 시험을 준비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낙방의 쓴맛을 맛본채 다시 학교로 돌아와 전공 수업을 들으러 온다는 것을 알았을 때 기분이 묘했습니다.
물론 붙은 사람들도 주변에 꽤 있습니다.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누군가는 시험에 붙는다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들이 취직 걱정을 할 때 고시 합격한 친구들은 꽤 폼나는 출발을 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열심히 공부해도 떨어질 경우에는 꽤나 암담해집니다. 특히 요즘같은 시대에는요. ''특히 요즘같은 시대''라고 한 이유에 대해서도 나중에 몇 자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랜만에 뻘글 쓰려니까 자꾸 중언부언하게 되네요. 요는, 한번쯤은 공부해서 시험치는 것을 제외한 플랜B에 대해서도 생각하는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시험 공부 열심히 해서 전문직 하는 것 말고, 본인이 이걸 해서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잘 하는 것을 한 번 찾아보시고, 정말 즐길 수 있는 것을 한번 찾아보셨으면 합니다. 학부 4년 + 군대 2년 동안 이거 하나라도 찾을 수만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p.s ^꼰^ 이나 ^틀^ 소리 들을 거 각오하고 올린 겁니다. 사실 제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해서 남 앞에서 제 이야기를 거의 안 하는 편입니다만, 그래도 입시커뮤니티 사이트에 한 번쯤이라도 누군가가 이걸 읽고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해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뻘글이라도 올릴 생각입니다.
기타 질문도 환영합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궁금
-
정부 지지합니다 4
그대로 밀고 가주세요 정부가 까라면 까야지
-
오르비에서 발작버튼 눌려...
-
GP 치 한한테 개방해서 날려버리기만 하면 저절로 필수의료 분야에 가지 않을까 이미...
-
내란에 준하는 미친짓이란 생각이 들더라 이건 삭제 안한다
-
책임당원에 청년당원모임도 나가는데 좀 너무하지않냐..
-
갇혐ㅅ어
-
ㅈㄱㄴ
-
한동훈이 의협한테 돈 받고 분탕만 안치면 증원은 될 듯 원래 라이센스 개수는 정부가...
-
한 일주일은 기다려봐야함?
-
저녁 메뉴 추천좀 해주세오
-
이제 다른 거 또 패러 갈 꺼임 유력후보 : 공무원, 교사 , 약사 <<< 국민들이...
-
우리 사회가 정한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관철하기 위해...
-
6개월 1
긍정적인 사고!! 하지만 힘들다..
-
와 귀엽다 0
좋네요
-
시즌 999번째 기각된다~~ 총선지나면 철회한다~~ 총선직전에 철회한다~~ 라고 굿...
-
물1 노베인데 2
배기범 개념 듣다보니 뭔가 좀 어려운데 강민웅이나 다른 쌤들도 비슷한가요? 물리...
-
강기분,새기분은 다 끝냈고 지금은 현강 다니고있어서 이감 모고 현장에서 풀고...
-
지방 의대생 4
의대 입학하기 위해 4년 넘게 노력하면서 하루에 10시간 넘게 공부하며 코로나...
-
푸신 분들 후기좀..
-
경제 3 2
-
이건 또 아닌듯요
-
개원 허가 기준이 도댜체 뭔가요
-
힘이 쫙 빠지네요.. 11
다른건 아니고 Pt가 너무 힘들다옹..
-
[속보]한덕수 “‘의대 증원’ 사법부 현명한 판단 감사…대입 절차 신속 마무리” 2
한덕수 국무총리는 16일 의료계가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의과대학 정원 증원 집행정지...
-
영어 단어장 다들 뭐씀 14
공유좀 집에 중딩때쓰던 워마 있는데 너무쉽던데
-
법원결정·여론 업고 의대증원 드라이브 … 올해 1469명 더 뽑는다 3
https://naver.me/Fx9OLPmq 드라이브~
-
진성 문과라서 의대 이슈에 큰 관심은 없는데 유일하게 걱정되는건, 유급 때문에...
-
3모 백분위 94 4모 백분위 95 (둘다 메가 기준) 둘다 3짜리 실수해서...
-
근데 드릴은 4
최신 것만 푸는 줄 알았는데 딴 사람들은 드릴드부터 드릴5까지 풀던데 원래...
-
근데 의대 증원 6
집단 유급되면 또 달라지지않나여??감축하지않을까요
-
의대증원때문에 다시 살아났누.... 분위기 험악해질거같아 무섭다
-
출산율 0.6인데 지금 그 여파가 10년정도 후부터 어느정도로 올라나 ㄷㄷ
-
ㄹㅇ
-
생각이 다르다고 무작정 조롱하거나 욕박지는 맙시다~ 우리 함께 건전한 오르비를 만들어 가요
-
과 단톡에 실수로 오르비 링크 올려버림 반수각인가 13
저매추 해쥬세요
-
'법원 길 무사 통과' 27년 만의 의대증원 성큼 11
https://naver.me/FOMev4Sa 성큼성큼~
-
오랜생각이다.
-
현재시점 메가스터디 국어영역 1타강사 강민철 선생님.
-
쉬4? Step2가 준킬러~킬러죠?
-
ㅈㄱㄴ
-
이번주에 처음 가는데 이번주 김승모 친다는걸 카페에서 봤는데 맞아?.... 2회...
-
돈을 떠나서 대통령, 의료계 및 전국민들이 숨죽이고 초조하게 나의 판결만을...
-
경제 2 3
-
한의사 전망은? 3
ㅈㄱㄴ 호재임?
-
ㄹㅇ ㅋㅋ
-
본과 5학년 신설, 전원 진급 후 신입생 받기 아니면 예과 0학년 신설
-
1.일단 정상적으로 신입생 뽑고 25학번은 6년 내내 8000명이 같이 수업 듣기...
맞는말씀,,근데 솔직히 모르겠음 내가 정말 남들보다 특출나게 잘하고, 흥미있는 분야? 돈 좀 못벌더라도,수입 안정적이지 않더라도, 사회적 지위 좀 낮더라도 이런거 다 감안하고서라도 뛰어들수 있는 직업? 전 못찾겠네요. 그래서 공익근무하면서 cpa준비도 병행해볼 생각입니다. 뭘 하던지 힘들지만 전문성이 없으면 더 힘들다고 생각하니깐요.
cpa 응원합니다!
정말 좋은 글인 것 같습니다...
문과 재수생으로서 지거국 행정학과 면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보다 더 뒤쳐진 위치라고 항상 자책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꿈은 행정학과 교수입니다.. 고교 3년동안 무시도 많이 당하고, 스스로 좌절할 때도 많았습니다.. 올해 대학을 합격하게 된다면 세상을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제대로 직시하고 싶습니다.
존버는 승리합니다.
작성자님은 진로를 결정하셨나요? 아직인가요?
일단은 지금 당장 돈 버는 쪽으로는 안 갈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