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결 [425768] · MS 2012 · 쪽지

2013-09-23 22:57:27
조회수 8,305

이안의 우문현답 시리즈 - 연고대의 결정적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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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생 때, 판사 출신의 모 교수님께 질문을 즐겨 했었다. 
이론이 아닌 실무가 출신답게 명쾌하고 판례에 기반한 해설을 즉각적으로 해주시는 게 좋아서
거의 매주 메일을 보내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난다.

시험을 2주 가량 앞둔 어느 날, 나는 여느 때처럼 메일함을 열어보았고, 평소와는 조금 다른 답장을 받았다.
'시험에 임박한 지금, 질문을 하는 것도 답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학생이 혼자서 찾아낼 것이라 기대합니다.

꽤나 다른 차원의 문제지만, 파이널 시즌의 강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수시 전형이 확대되었다 한들, 결국 시험의 본질은 다수 중 극히 일부를 선발하는 일이다. 그 목적이 어찌되었건
시험이란 본질적으로 선발보다는 선별의 기능에 가까운 제도인 셈이다.

결국, 파이널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벼락치기 전쟁에서 
내가 수강생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 무차별적인 지식을 배포 내지 살포하는 일은
내 알량한 도덕관념이나 지적 허영을 만족시킬 수는 있을지 몰라도
냉정하게 말하면 나를 믿고 나를 독점계약(holding deal)한 수강생들에 대한 배신이다. 

이십대 초반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때,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현실 혹은 진실이 바로 이것이다.
강사는 수강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해야 할 의무뿐만이 아니라
동시에 수강생이 아닌 이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전달하지 않아야 할 의무 또한 진다는 것.

파이널 직전이 되면 수없이 쪽지가 밀려들어온다. 어차피 다 답할 시간도 없겠지만, 차라리 펼쳐 보지 않으려 노력할 때가 많다. 내게 신뢰를 공여하는 학생들을 위해 침묵해야 하는 순간, 침묵해야 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의 우문현답은 우문에 그쳐야 할지도 모르겠다. 현답은 그대들의 몫이다.

연세대와 고려대는 기본적으로 매우 비슷하다. 항상 논술실록 개정작업을 할 때마다 연대편, 고대편을 분리할까 말까 하는 고민이 드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들의 결정적 차이는, 비교 문제에 있다.
연대는 기본적으로 정확하게 각 키워드간의 일대일 대응구조를 기반으로 논리적 인과관계(목적-수단, 원인-결과)를 중시한다. 이 논리적 인과관계는 대부분의 경우 횡적 선후관계로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므로, 제시문의 극히 일부만 파악하더라도 연세대 문제는 '일부에서 전체를 추론'해 낼 수 있는 셈이다.

고려대는 이에 반해, 키워드들 간에 미싱 링크를 전제한다. 그리고 그 미싱 링크를 찾아내는 것이 고려대 인문논술 문제의 핵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완벽한 일대일 대응 구조가 결여되어 있으므로 당연히 비교 기준은 종적으로 다각화될 수밖에 없다. 객관과 주관, 절대와 상대, 주체와 객체의 대립이 등장하고, 연세대와 달리 노골적으로 절충설을 강요하기도 한다. 

결국, 고려대의 경우 연대와 달리 유형화보다는 기초적 논리구조의 확장-배제에 대비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주어진 텍스트에서 가설을 도출해 내는 능력을 검증하기엔 조금 어렵지 않느냐고? 그래서 25점에 불과한 고려대 수리논술이 당락을 좌우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 주는 고려대와 연세대의 정기전이 열린다. 평생 한 그라운드를 공유하고 살아갈 이 두 명문 사학의 학생들은, 하지만 크림슨 레드와 로열 블루로 분명히 나뉜다. 그들을 가르는 선 역시, 이 거친 입시 전쟁에서부터 이미 확고히 그어져 있는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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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reat Gatsby · 414753 · 13/09/23 23:25

    뜬금 질문인데요
    논술을 시작하려는 고2 학생입니다.
    타 사이트에서 기초강의, 다른 강의 하나 더 듣고, 논술실록,절대구조 구매해서 3학년 때 까지 공부하다 파이널 들어주면 되는건가요??
    그리고 논술선발인원이 줄어든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 은결 · 425768 · 13/09/24 01:42 · MS 2012

    1. 논술선발인원은 줄어들되, 다른 형식을 빌린 논술고사가 치러질 겁니다.
    2. 서울 주민이시면 현강 들으러 오시면 되고, 아니면 인강을 들으시면 됩니다. 제건 비싸서, 굳이 제걸 들으실 필요가 없어요. 가장 중요한 건 수능 직전까지 수능에 올인한 다음, 파이널 1주동안 영혼을 쏟아붓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는 거죠.

  • Great Gatsby · 414753 · 13/09/24 18:20

    논술보기 1주정도만 논술 준비를 해도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1년동안 준비하는 것 아닌가요?? 예비고3입니다.

  • 은결 · 425768 · 13/09/24 22:13 · MS 2012

    대치에서는 예비 고1반도 열립니다만, 올1이 자신있는 학생이 아닌 바에야 저는 논술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걸 추천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합4정도는 안정적으로 나온 '다음'에 논술에 손대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신의 현위치가 충분히 상위권이라면 당연히 논술에 투자해야죠. 항상 남들보다 한 스텝씩 앞서가는 게 입시의 기본입니다. 서글프지만요.

  • 노력하라 · 412598 · 13/09/23 15:23

    올해 논술모의가 없는걸로 봐선 삼자비교를 또다시 포기할거란 예측이 있던데,만일 그렇다면 난도는 작년수준을 유지할까요?ㅠㅠ

  • 은결 · 425768 · 13/09/24 01:43 · MS 2012

    3자 비교는 포기하더라도 아마 일대일 대응구조는 안 버릴 겁니다. 난도는 어려울 차례입니다.

  • 씨이오 · 445155 · 13/09/23 17:34 · MS 2017

    연대논술준비생인데요.. 논술시간이항상부족해서 2번문제 날림으로쓰게되는데 시간줄이는데 조언좀부탁드립니다..ㅜㅜ

  • 꼭간다. · 449908 · 13/09/24 11:04
    회원에 의해 삭제된 댓글입니다.
  • DIRECTOR · 263694 · 13/09/24 14:50 · MS 2008

    각 키워드간의 일대일 대응구조를 기반으로 논리적 인과관계(목적-수단, 원인-결과)를 중시한다. 이 논리적 인과관계는 대부분의 경우 횡적 선후관계로 연결되어 있기 마련

    이부분을 기출문제를 예시로 설명해주시면 안될까요? ㅠㅠ

  • 해원(난만한) · 347173 · 13/09/24 16:07 · MS 2010

    캐스트제목이.. 연세대와 고려대의 차이라 되어있어서 클릭했는데 이게뭐야./....

  • 전북도다 · 425207 · 13/09/24 21:28 · MS 2012

    해원군(을)를 낚았다!

  • 은결 · 425768 · 13/09/24 22:15 · MS 2012

    흐음 '논술고사의' 차이였는데 ㅍㅍ 고연전을 앞두고 다들 민감할 시기인가요 ㅍㅍ

  • 꼭간다. · 449908 · 13/09/24 21:25

    선생님 수능끝나고 한양대 경희대 고대 이렇게 논술이 몰려잇는데요
    파이널을 어떻게 들어야 할까요?? 다 들을수는 없는데ㅠㅠ

  • 은결 · 425768 · 13/09/24 22:18 · MS 2012

    고대 파이널 현강을 듣고 다른 학교 하나를 인강으로 들으면 되지 않을까요? 특히 수리논술은 인강이든 현강이든 한번은 수강하는 걸 추천합니다. 보통 복습용 인강을 제공하는 파이널도 많으니, 현강 - 인강 스케줄로 빡세게 1주 보내는 게 나아 보여요.

  • 꼭간다. · 449908 · 13/09/24 22:40

    선생님 하나만 더 여쭤볼게요 ㅠ

    지문독해가 너무 힘든데 연대논술은 포기해야할까요ㅜ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일단 연대파이널인강 이번주 금토일에 몰아서 끝낼 생각입니다..
    주말엔 모두 논술에 쏟아부으려구요..

    근데 답찾는것도 너무 힘들고..
    아니 실전에서 저런난ㅇㅣ도의 지문에서 정확한 답을 도출해내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가요???ㅜㅜㅜㅜ

  • Dignitas · 441451 · 13/09/25 09:12 · MS 2013

    다른걸 생각하면서 들어왔지만 ㅋㅋ 그래도 좋은글이네요 잘읽고갑니다!

  • 트로츠키 · 347795 · 13/09/26 08:24 · MS 2010

    딴지 하나 걸고 갑니다.
    강의를 듣지 않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지 않아야 할 의무라는 것은 자본주의의 의무이지 과연 선생으로서의 의무일까요?
    '알량한 도덕관념' 을 만족시키는 것이 싫어서 선생의 자세조차 버리게 된다면 돈에 눈이 먼 일부 강사들과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요?

    님의 대담한 주의주장이 글 읽는 분들로 하여금 '지식을 팔아먹는 자'로서의 강사의 위치를 더욱 강조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에 적어봅니다.

    사교육시장이 비판받는 이유중 가장 큰 문제아닐까요... 강의를 와서 듣는 학생이나 인터넷 로그인해서 일부러 찾아보는 학생이나 돈을 내고 안냈다 뿐이지 다를 바는 없습니다. 그저 선생에게는 학생이지요. 돈을 내고 듣는 학생이 아 인터넷에 쳐 봐도 당신이 가르쳐주는 지식을 얻을 수 있구나 하고 그 강의를 수강안할까요? 그냥 강사의 입장에서 본 비약일 뿐입니다.

    '가르치는 선생' 인가 '지식을 파는 사람' 인가 의 입장에서 후자를 택하겠다면.. 학생으로부터 선생의 호칭을 듣는 것조차 치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강의를 하는 누구에게나 나이와 상관없이 선택의 문제이지. 어릴때는 가르치고 싶다가 어느정도 나이 들고 나니 이제 '판매'의 기본을 알겠다 라는 식으로 나이어린 치기로 치부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