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의곰 [1090146] · MS 2021 (수정됨) · 쪽지

2021-11-02 08:4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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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과윤리 개념정리] 노직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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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직접 일을 해서 돈을 벌어본 적이 있나요? 쌤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돈을 벌어 봤어요. 쌤은 어렸을 때, 강시 영화 마니아였어요.(강시가 뭔지도 모르죠? ㅎㅎㅎ) 매주 월요일에 부모님께 용돈 천 원을 받으면, 바로 비디오 가게로 달려가 강시 영화를 빌려왔지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천 원이 부족하게 느껴졌어요. 보고 싶은 강시 영화는 많은데, 비디오를 빌릴 돈은 부족했던 거죠. 그래서 신문 배달을 하기로 결심했어요. 새벽에 신문소에 찾아가면 할당된 만큼의 신문을 배급해 줬어요. 신문을 옆구리에 끼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현관문 앞에 신문을 가져다 놓았죠. 배달하는 일 자체는 버틸만했는데, 캄캄한 어둠 속에 홀로 있는 것이 너무 무서웠어요. 으슥한 골목에서 강시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거든요. (강시를 제압하기 위해 부적도 지니고 다녔답니다.) 담벼락에 묻어 있는 핏자국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낮에 찾아가보니 김칫국물이었답니다.) 자동차 밑에서 들려오는 아기 울음소리 때문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지요.(알고 보니 고양이 울음소리더군요.?) 한 달을 이를 악물고 버틴 결과, 태어나서 처음으로 월급이라는 것을 받게 되었어요. 지금 보면 얼마 안 되는 소소한 액수였지만, 12살 소년에게 '내 스스로 떳떳하게 돈을 벌었다'라는 자긍심을 심어주기엔 충분한 금액이었죠.




 그런데 만약 어머니께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면서 다가와

 "아들아, 네가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서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럽단다. 앞으로는 생활비로 수입의 30%를 내도록 하렴. 그 돈으로 동생이 학용품을 살 수 있다는 게 참 보람되지 않니?"라고 말씀하신다면 어떨까요?

 아마 롤스라면 이렇게 대답했을 거예요.

 "저의 능력이 우리 집안의 최소 수혜자인 동생을 위해 쓰일 수 있다니 참 기쁘군요. 정말 공정한 생각이십니다!"


 롤스기본적 자유를 평등하게 갖고, 기회가 균등하게 보장되며, 최소 수혜자를 배려하는 분배 방식이 정의롭다고 주장하였으니까요. 롤스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기 위해재분배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소득이 많은 사람들에게 세금을 걷어, 최소 수혜자에게 이익이 되도록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롤스의 정의의 원칙은 현대 사회에서 실제로 구현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연 소득 10억 원이 넘는 고소득자는 소득의 45%를 세금으로 냅니다.반면 연 소득 1200만 원이 안 되는 저소득자는 소득의 6%만 세금으로 내지요. 고소득자에겐 45%, 저소득자에겐 6%의 소득세를 부과하는 분배 방식은 비록 평등하진 않지만, 공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바로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추구했던 롤스의 차등의 원칙과 일치하는 분배 방법인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사과를 딸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고 하더라도[평등한 자유의 원칙], 사과나무가 기울어져 있다면,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최소 수혜자)도 사과를 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기회균등의 원칙], 사다리를 더 높여 줘야 [차등의 원칙]한다고 본 것이지요.

 하지만 노직이라면 롤스와 달리 어머니께 이런 식으로 말대답했을 것 같아요.

 "아니, 어머니! 제가 땀 흘려서 번 돈인데, 제 동의도 없이 30%를 생활비로 내라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전 강제 노동을 한 게 아니라고요."

 롤스와 함께 하버드 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근무했던 노직은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하였습니다. (직장 동료끼리 뜨거운 논쟁을 펼쳤으니 서로 참 불편했겠죠?)






 노직은 자유를 강조한 롤스의 '평등한 자유의 원칙'에는 동의하였어요.하지만최소수혜자에게 최대 이익이 되어야 한다는 '차등의 원칙'에는 반대하였지요. 노직은 자유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생각했는데, 차등의 원칙은 부자들의 자유를 침해하니까요. 노직은 롤스의 차등의 원칙과 같이, 특정한 기준을 가지고 분배하는 방식(정형적 원리)에 반대하였습니다. 무언가특정한 기준을 가지고 분배한다면, 반드시 누군가의 자유는 침해될 거라고 보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노직은재산을 소유하게 된 역사적 과정이 정의롭다면(분배의 역사적 원리), 누가 얼마나 소유할지 미리 정해놓지 말고(비정형적 원리), 최대한 자유에 맡겨야 한다(자유지상주의)고 주장하였습니다.


 노직은 이렇게 말합니다.

 "정당한 노동의 결과로 얻은 소득을 세금으로 걷는 것은 강제 노동을 시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어른이 되면 하루에 8시간 이상을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보내게 됩니다. 자신의 일을 너무 사랑해서 주말과 휴가도 반납하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할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요?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월요병에 시달리며, 일하는 내내 불금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그 일에 나와 내 가족의 생존이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노동을 통해 벌어들인 소득은 한 개인에게 절박하고 소중한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피 같은 돈의 30%를 누군가 허락도 없이 가져간다면 어떨까요? (실제로 세금은 월급 통장에 찍히기도 전에 빠져나간답니다.) 일주일에 이틀은 남을 위해 강제 노동한 것과 다를 바가 없죠. 노직은 노동을 통해 정당하게 벌어들인 소득을 침해하는 행위야말로 부정의한 일이라고 본 것입니다. 설령 그게 국가라고 해도 말이지요.


 롤스가 국가에 의한 재분배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 반면, 노직은 재분배 정책은 개인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부당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 가난한 사람을 돕는 행위는 부자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부당한 행위라고 본 것이죠.


 노직은 <아나키, 국가 그리고 유토피아>에서이상적인 사회(유토피아)가 되기 위해 필요한 국가의 역할에 대해 제시하였습니다. 그는 우선 국가라는 존재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 고민해 보았습니다. 

 국가가 없는무정부상태(아나키)라면 어떨까요? 국민을 지켜줄 공권력이 없기 때문에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안전하게 보호받지 못할 거예요. 내전으로 인해 난민이 된 사람들이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사는지 보면 알 수 있죠. 며칠 전 쇠사슬에 묶여 살던 6세 시리아 난민 소녀가, 배고픈 와중에 음식을 급하게 먹다가 질식사했다는 슬픈 소식을 접했습니다. 어른들이 만든 부정의한 세상 속에서 고통만 받다가 세상을 떠난 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저미네요. ㅠㅠ







 반대로강력한 권력을 가진 국가가 국민의 생활을 통제하면 어떻게 될까요? 국가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나 권리가 희생 당할 거예요. 전체주의 국가에서 무고한 사람들의 인권이 얼마나 쉽게 짓밟히는지 보면 알 수 있죠. 지금 우리가 민주적인 사회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게 된 데에는, 독재 정권과 맞서 싸운 민주 열사들의 피흘림 덕분이지요.


 그렇다면 노직이 생각한 유토피아는 어떤 모습일까요? 노직은 국가의 필요성을 인정하였습니다. 하지만국가의 역할을 최소한으로 줄여야한다[최소 국가]고 보았지요. 국가의 역할이 꼭 필요한 일이 뭐가 있을까요? 폭력, 절도, 사기, 계약 불이행과 같은 범죄로부터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으슥한 밤, 어두운 골목길을 마음 놓고 돌아다닐 수 있게 해주는 경찰관처럼, 국가가 밤의 경찰[야경국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철학적인 논증 과정을 거쳐, 노직은 다음과 같은정의의 원칙을 제시하였습니다. 정당하게 노동을 하여 얻은 소유물[취득의 원칙]이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합법적으로 넘겨받은 소유물[양도의 원칙]에 대해서는 개인이 절대적 소유 권리를 가진다.

다만 소유물을 취득하거나, 양도받는 과정에서 부정의한 부분이 있을 때는 이를 바로잡아야[교정의 원칙] 한다.








 똑같은 정의라고 하는 문제를 바라보면서도, 롤스와 노직의 입장에 차이가 있는 것이 흥미롭지 않나요? 같은 숫자를 바라보면서도, 자신이 서있는 위치에 따라 6으로 보일 수도, 9로 보일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여러분들은 어떤 시각으로 정의를 바라보고 있나요?

롤스와 노직 중 누구의 정의관이 더 가슴에 와닿나요?



출처 : '물가의곰 생활과윤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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