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기 선생 [487716] · MS 2014 (수정됨) · 쪽지

2014-01-19 15:49:49
조회수 20,296

재학생이 재수생을 이기기 어려운 한 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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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대한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재학생은 재수생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아니라
재수생의 이런 점을 배워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재수생의 강세는 여러 해 전부터 우리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이미 한 바퀴 이상의 공부가 끝났고, 실전 경험도 가지고 있고, 재학생과는 다르게 내신 등의 부담 없이 수능에만 전념할 수 있고.... 기타 등등 매우 많은 이유를 열거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재수생과 재학생 수업을 모두 진행해 보면 뚜렷하게 다른 하나가 있습니다.

절박함의 정도입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가운데는 재수의 경험이 있는 분도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재수학원의 정문을 처음 들어갈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기억하시나요?
학생들을 상담해 보면 대체로 이런 답이 제일 많습니다.

제가 재수학원에 올 줄을 몰랐어요. 작년 1년 동안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오니 화도 나도 배신감도 느끼고....”

결국은 수능에 대한, 자신에 대한, 상황에 대한 분노가 제일 큰 듯 합니다. 그 분노가 결국은 올해는 절대지지 않겠다는 절박함으로 변해서 1년을 견딜 수 있는 추진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재학생들은 절박함이 없는가? 아니지요. 분명히 있을 겁니다. 다만 재수생들이 느끼는 절박함과는 질적으로 조금 차이가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다. 

저도 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입니다.
학생들의 열정을 공유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도 한 때는 매너리즘에 빠져서 마치 강의하는 자판기처럼 떠들어 대던 때가 있었습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수업이었고(하루 평균 6-8시간), 주말에는 토요일 12시간, 일요일 12시간 연강 수업이었습니다. 일 년에 추석 당일, 설날 당일 밖에는 쉬는 날이 없었고, 추석은 파이널 기간이기 때문에 쉬지 못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한 학원에서 수업이 끝나면 다음 학원으로 옮겨가면서 시간이 없어 차 안에서 한 손에는 김밥을 또 한 손에는 핸들을 잡고 운전을 했었습니다.

솔직히.... 그땐..... 강의 하는 게 싫었습니다. 쉬고 싶었고, 좀 놀고 싶었고, 강의 안하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알아 보기도 했고, 직업을 바꿔 볼까도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싫었습니다.

그러다 작년 26일 눈이 가장 많이 온 날입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팔, 다리가 마비가 와서 잘 움직이지 않더군요. 그날 오후에 문법 특강 수업이 있었기 때문에 강의 준비를 해야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살짝 짜증이 났습니다. 억지로 몸을 추스르고 2층에 있는 서재로 올라가던 중에 계단 중간에서 정신을 잃고 쓰려졌습니다. 그리고 바닥에 머리를 부딪히는 바람에 두개골은 골절이 되고, 뇌경색과 뇌출혈이 함께 발생한 위급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119가 집에 왔습니다. 가끔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 아주 특별한 사람들만 그 차를 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특별함이 일상을 살고 있는 저에게 찾아 온 것입니다. 혼수 상태에서 3일만에 깨어나기는 했으나 생명이 위태로운 매우 위중한 상황이었습니다.  

회복을 하면서 병원에 누워 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사람처럼 살려면 1년 정도는 걸릴 거라고 하시더군요. 갑자기 멍해 졌습니다. 참 신기한 것은 불과 며칠 전까지 조금만 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소원했으면서, 정말 쉬어야 하는 상황이 되고 학생들 앞에 설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하니까 마이크를 잡고 수업을 하고 싶은 열정이 생기더군요. 할 수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할 수 없게 되니 하고 싶어 졌습니다  

저는 의식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모르핀 주사를 맞고 하루에 3-4시간은 혼수 상태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혼수 상태에서 한 번도 와 보지 못한 공간을 걷고 있었는데, 그 때도 그 생각을 했습니다. “, 수업할 때 애들한테 이 얘기 해 줘야지...”. 그 만큼 강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절박했던 모양입니다.  

어쨌든 예상보다 빨리 퇴원을 했습니다. 집에서 요양하라고 하더군요. 처음에 집에 와서 제일 먼저 한 게 수업 준비입니다. 이미 한달 넘게 휴강한 상태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아무도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냥 수업 준비가 하고 싶더군요.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녹녹할 리가 없지요. 생각보다 빠른 쾌유라고 곧 현장에 복귀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눈이 안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뇌 경색 환자들에게 가끔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회복되는데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릴 거라고 별 감정을 싣지 않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을 하시는데 정말 절망적이었습니다.

뭔가 내 몫의 일을 하고 싶은데, 정말 신나게 강의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겁니다. 특별한 약을 먹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치료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집에 누워서 앞이 잘 보일 때까지, 회복될 때 까지 쉬고 있으라는 겁니다.

 

저는 그 때 알았습니다. 바닥을 쳐야 뛰어 오른다고들 하지요. 정말 인생의 바닥을 친 느낌이었습니다.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눈이 잘 안보이니 책을 볼 수도, tv를 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냥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었습니다. 절망의 깊이가 깊어 질수록 강의에 대한 절박함의 깊이도 깊어지더군요. 그래서 의사의 만류를 거절하고 잘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강의에 나갔습니다. 다행히 선생이 돌아올 거라고 믿고 기다려준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수업 교재는 잘 보이지 않으니 그냥 외웠습니다. 대충 한 번 볼 자료를 안 보이는 눈으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았습니다. 절박했으니까요. 회복되고 처음 강의를 나간 날 저희 가족 모두 초긴장상태였습니다. 다시 쓰러지면 죽는다고 했으니 그럴만도 하지요. 정말 목숨 걸고 강의한 겁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오히려 무리하고 일을 하니까 서서히 눈도 보이기 시작하고, 몸에 기운도 붙고 살만한 겁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절망이고, 사람을 살리는 것은 절박함이구나. 

제 개인사는 이야기를 가능한 안 하려고 하는데 어쩌다 보니 이야기가 또 장황해 졌군요.

 

그때 몸으로 알았습니다. 절박하게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오는지 말입니다.

공부하기가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정말 어떤 이유로 책 한 자 볼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우리 모두는 어쩌면 책이 보고 싶어져, 학교에 가고 싶어져 미쳐버릴 지도 모릅니다. 큰 일을 당하고서야 뭔가 알게 되는 저 같은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재수생들은 원치 않게 실패를 맛 보았고,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을 겁니다. 재수를 어떤 학원 이사님은 징역 10개월, 벌금 1200만원이라고 정의하시더군요. 대학생도 아닌데 책값, 학원비, 교배비, 용돈까지 챙겨주시는 부모님께 미안해서라도 올해는 절대 실패할 수 없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공부를 할 겁니다. 재학생들은 경험에 보지 않았으니 불안감은 있겠지만 절박함의 정도는 다를 겁니다. 절박해야 합니다. 올해 끝을 본다는 마음으로 순간을 보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학원 현장에 있다보니 참 안타까운 일을 많이 봅니다.

정말 미치도록 열심히 한 학생이 원하는 대학에 떨어지는 경우도 봤고, 대충 공부했던 학생이 명문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도 봤습니다. 열심히 하고 그렇지 않고는 우리가 통제 할 수 있지만 합격, 불합격의 여부는 아마 저 하늘에 계신 높은 분이 결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절박한 마음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기를 바랍니다.
  

20141113일 오후 4시 경에 시험 종료 종이 울렸을 때, 적어도 마음 속으로 ‘1년 잘 보냈다. 후회 없다. 다시 1년이 주어져도 더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우리 모두 성공한 한 해를 보낸 것이 아닐까요? 결과에 대한 불안을 잠시 접어두고, 절박한 마음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기를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선생도 여러분께 이런 말을 조언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항상 생각해 봅니다. 선생이라는 위치 때문에 아는 척, 잘하는 척 이야기하지만 저도 어차피 여러분과 같은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는 하나의 자연인일 뿐입니다.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내자라는 말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모두의 건승을 진심으로 빌어 봅니다.

ps. 오늘 상담 중에 고3 학생 하나가 어차피 3년 공부해서는 좋은 대학 가기 어려운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해서 안타까운 마음에 몇 자 적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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