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비 문학] 핫산
이 소설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과 장소는 픽션입니다.
일체 특정 집단에 대한 비하 목적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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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핫산.”
핫산은 사장의 말을 듣고 구부렸던 쇠자가 펴지듯이, 번뜩 , 일어난다.
핫산은 철판을 자르는 공장에서 일한다.
이곳의 사장은 아직 아날로그의 향수에 젖어있다.
공장 바깥의 현대인들이 아이폰6를 들고 다니며 서로에게 자랑을 하는데 아직 사장의 폴더 핸드폰(핫산은 영어는 능통하여 ‘모토로라’ 라고 동료 직원에게 알려준 적도 있다.)은 녹광을 뿜는다.
스크루지도 울고 갈 이 사장은 신비한 고향을 등지고 지옥불반도로 온 핫산에게 겨우 시급 4500원을 쥐어준다.
그야먈로 핫산은 수라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핫산, 왜 근무 시간에 화장실 청소를 하지 않았지?”
핫산은 아직 한국말이 서툴러 그 말을 전부 이해하지 못한다.
핫산이 할 줄 아는 말은 ,네 , 고맙습니다 , 알겠습니다 … 따위 뿐이다,
그의 뇌엔 오랜 근무로 인해 ‘거절’이라는 프로세스가 제거되어 있다.
핫산은 사장의 요구에 화장실 청소를 하러 공장 바깥에 있는 자그마한 임시 변소로 향한다.
그곳엔 세 인부가 담배를 피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담배를 피지 않고 싸구려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든 인부가, 비쩍 마른 입술을 혀로 낼름, 적시고 말한다.
“거 얘기 들었소? 저기 3구역의 최 양이 프레스에 손이 끼어 잘라냈다고 하더만...”
그 말에 담배를 문 인부 둘이 크게 놀라며, 히익 , 세상에 , 참한 처녀였는데 … 라는 말을 기계처럼 반복했다.
하지만, 결국엔 남의 일이다. 이들이 말하는 최 양은 결국 잊혀질 것이다.
떠난 사람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잊혀져 간다.
그러다 커피 잔을 든 인부가 다시 입을 열어 화제를 바꾼다.
“거 사장 아들이 이번에 배재대를 갔다는데??”
그러다가 담배를 문 한 인부가 대답했다.
“거 내 아들도 내년에 수능을 보는디, 사장놈 아들내미 만큼 못해주는 게 좀 그려혀”
다른 인부가 말한다.
“아니, 배재대가 뭐시 잘났다고 그려? 그 우에 좋은 대학이 몇갠디?? 사장놈 아들내미 문과 아녀?? 결국엔 여서 철판 짜르는 일이나 더 하겄어??”
“아들내미가 애비의 반의 반도 못 따라가는구먼, 애비인 사장놈은 거 성균관대인가를 나오지 않었어?”
“성균관? 고것이 아직도 있당가? 거 고려시대에 세워진 거시 아녀??”
“아따, 그런 데를 나왔구먼....”
그들은 단체로 고개를 끄덕이며, 영양가 없는 ‘남의 일’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 인부들은 실업계 고등학교에 2년제 전문대를 나온 인부들이다.
하지만 거친 세파를 겪으며 누구보다도 현실을 잘 직시하는 자들이다.
핫산은 한국말이 서툴기에 저들의 말을 전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국에서 핫산은 4년제 대학에서 천문학을 전공하지 않았는가!
그의 개조된 두뇌는 갑자기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엔 ‘수능’ 이라는 단어와 ‘배재대’, ‘성균관대’, ‘좋은 대학’, ‘문과’ 라는 말이 새겨졌다.
‘문과‘ 와 ‘배재대’ 타이틀을 얻게 되면 이곳에서 영락없이 철판을 자르게 된다.
하지만 ‘성균관대’의 타이틀이면, 사장처럼 떵떵거리며 명령내리고, 어느 한 왕국의 왕인 마냥 살 수 있다는 건가?
핫산은 이제 28살이다. 품속에서 고향의 가족사진을 꺼낸다.
그의 기억을 스쳐가는 주름이 가득한, 어머니의 모습, 아리따운 아내, 핏덩이 같은 자식,
핫산은 이곳에 무엇을 하러 왔는가.
돈을 벌기 위해 왔다. 그는 고향의 가족들과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돈을 벌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런 스크루지의 철판 공장에서 변소 청소나 하여 돈을 벌수나 있겠는가?
그는 앞으로…
“핫산, 사장님이 널 부르신다.”
“네…”
핫산은 원대한 상상 속에서 자신의 포부를 이어가지 못한 채 사장이 자신을 왜 부르는가에 대해서만 상상하기 시작한다.
핫산은 사장의 방에 들어선다. 그의 코를 자극하는 냄새.
퀴퀴한 홀애비 냄새와 담배 찌든내, 곰팡이, 마치 장형의 반지하방에서 나는 냄새다.
의자엔 사장이 앉아있다.
“핫산, 일을 하다가 어디로 사라진거야?”
핫산은,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죄쏭합니다, 라는 말만 계속 반복했다.
사장의 인신공격은 계속 되었다.
부모님의 안부, 자식 걱정…
그 전설의 리그? 인가 하는 게임에서도 이렇게까지 상대방을 헐뜯진 않을거다!
사장은 씩씩거리며, 핫산을 돌려보낸다.
핫산의 눈에선 닭똥같은 눈물이 뚝, 뚝, 떨어진다.
‘그놈의 대학이 문제다.’
‘이 지옥불반도에선 대학과 계열이 문제다.’
‘그노오오오옴의 대학!’
핫산은 속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그의 고통을 알아줄 이가 이곳에 얼마나 있을까.
같이 일하며 한글을 조금씩 알려주는 장형도 핫산의 고통을 전부 이해할 순 없을 것이다.
핫산은 사장실을 등지며, 자신의 상상을 다시 펼치기 시작했다.
이번엔 자기 자식에 대한 상상이다.
“내 자식을 ‘성균관대’ 혹은 그보다 ‘좋은 대학’에 보내서, 사장놈을…”.
하지만 이 상상은 과연 현실이 될 수 있을지, 이 나라에선 모든 것이 불확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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