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윤러 필독] EBS 서술 오류 “싱어에게 해외 원조 대상은 누구?”
[괜한 일 키우는 것 같아 망설이다가 다른 분도 관련 글을 올리셨길래 저도 슬쩍 올립니다.]
[모 강사와 EBS가 잘못 기술/강의한 내용입니다. 생윤러들은 필독하세요.]
EBS 수능특강 윤리와 사상 169p, 수능완성 윤리와 사상 106p에
“세계의 모든 가난한 사람들을 원조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싱어의 해외 원조론 설명으로 기술되었습니다.
이는 명백한 오류이기에 10월 15일 해당 내용을 EBS측에 정정할 것을 요청하였고,
EBS측으로부터 “명백한 오류의 사안이 아니기에 내년 교재에 반영하겠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을 받았습니다.
오류임을 간접적으로나마 인정하였으나, 정정되지 않아 이를 모르고 수능을 응시하게 될 수험생들을 위해 제가 직접 EBS측에 전달한 ‘내용 정정 신청서’ 전문을 공유합니다.
————
2025학년도 EBS 수능특강·수능완성 윤리와 사상 테마별 교과 내용 정정 신청 (24. 10. 15.)
먼저 학생들의 교육적 격차를 줄이기 위해 선도적으로 노력해주시는 귀사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다음은 <붙임 1>(‘이하 2025학년도 수능특강·수능완성 사회탐구영역 윤리와 사상 테마별 개념)과 관련된 내용을 정정해주실 것을 요청드림과 동시에 이의 근거입니다.
1. 싱어는 명시적으로 ‘해외 원조의 대상은 절대 빈곤에 처한 개인들’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싱어는 자신의 해외 원조 이론을 다루는 다수의 저작에서 ‘절대 빈곤에 처한 개인들’을 ‘해외 원조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싱어는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에서 원조의 의무는 그 대상이 절대 빈곤에 처해 있을 때‘만’ 발생한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싱어의 해외 원조 대상은 상대 빈곤이 아닌 절대 빈곤에 고통받는 사람에 국한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절대 빈곤과 그에 따른 배고픔, 열악한 영양상태, 주거의 부족, 문맹, 질병, 높은 유아 사망률, 낮은 평균수명 등을 나쁜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리고 또 도덕적으로 마찬가지로 중요한 일들을 희생시키지 않고 절대빈곤을 감소시키는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풍요한 사람들에게 있다고 가정한다. 만일 이 두 가정과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원칙이 올바르다면, 우리는 절대 빈곤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도울 의무를 갖게 되며, 이는 연못에 빠져 죽어가는 아이를 구할 의무보다 약한 것이 아니다.
[싱어, 『실천 윤리학』]
만일 이 두 가정과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원칙이 올바르다면, 우리는 절대빈곤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도울 의무를 갖게 되며, 이는 연못에 빠져 죽어 가는 아이를 구할 의무보다 약한 것이 아니다. 돕지 않는 것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죽이는 것과 같든 아니든 간에, 나쁜 일일 것이다. 돕는 것은, 관습적으로 생각하듯이, 하면 칭찬할 만한 가치가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쁜 것은 아닌 그러한 자선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하는 그러한 것이다.
[싱어, 『실천 윤리학』]
지금부터 우리 모두가 세계의 모든 이의 복지에 똑같은 책임을 가진다고 제안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원조의 책무에 찬성하는 논변이 그러한 것을 제안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어떤 사람이 절대 빈곤에 처해있고, 다른 사람이 그것에 상당하는 도덕적 의미를 가진 것을 희생함이 없이 도울 수 있을 때에만 적용된다.
[싱어,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싱어 : 어떤 절대 빈곤이 그에 상당하는 도덕적으로 중요한 다른 일을 희생하지 않고서 방지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절대 빈곤을 막아야만 한다.
[2020학년도 9평]
싱어 : 절대 빈곤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돕지 않는 것은 그들을 죽게 내버려 두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절대 빈곤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을 돕는 것은 공리의 원리에 따른 도덕적 의무이다.
[2023학년도 수능]
싱어 : 우리에게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으로 중요한 일을 희생시키지 않고 절대 빈곤을 감소시킬 힘이 있다면, 인류 복지의 최대화를 위해 우리는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2024학년도 6평]
2. 싱어가 다소 ‘강력하게 주장하는’ 해외 원조의 의무 대상에 ‘상대 빈곤에 처한 개인들’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싱어는 그렇다면 싱어는 상대 빈곤에 처한 개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싱어는 상대적 빈곤에 처한 사람들은 ① 자신의 필요를 위한 수입을 어느 정도 올리고 있으며, ② 자국의 지원을 받고 있는 자들이라고 주장합니다. 나아가 싱어는 상대 빈곤자들과 절대(극단적) 빈곤자들 간의 간격을 줄이는 것이 효율적 이타주의자들의 목적이라고 봅니다. 그 과정이 싱어가 ‘해외 원조’라고 일컫는 일입니다.
미국은 범세계적, 범역사적 기준으로 봤을 때 보기 드물게 잘사는 나라다. 미국에서 가난하다는 것은 압도적으로 부유한 대다수 구성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난하다는 뜻이다. 반면 개발도상국의 빈민은 생존을 위한 기본욕구를 해결할 형편조차 되지 않는 절대 빈곤에 처한 사람들이다. …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미국처럼 부유한 나라에서 가난한 것과 세계은행에서 정의하는 절대빈곤 사이에는 엄청난 격차가 있다는 것이다. 효율적 이타주의자들은 이 격차를 중요한 기회로 본다. 가난한 나라에 기부하면 같은 돈으로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싱어, 『효율적 이타주의자』]
어쨌든 현재 상황에서 우리는 외국인들에 대해 의무를 지고 있는데, 그 의무는 우리 국민에 대한 의무를 능가한다. 왜냐하면 비록 불평등은 종종 상대적인 것이지만, 앞에서 기술한 바 있는 절대 빈곤국의 빈곤은 다른 어떤 국가의 부와 비교한 상대적인 빈곤이 아니기 때문이다. 절대 빈곤국에 사는 사람들의 수를 줄이는 것은 분명 적당한 집에 사는 다른 사람들에게 궁전에 사는 사람들이 야기한 상대적인 빈곤을 줄이는 것보다 더 절박하고 우선적인 일이다.
[싱어, 『세계화의 윤리』]
산업화된 나라들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빈곤하다. 그들의 빈곤은 상대적이며, 그들은 그들의 기초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수입을 올리고 있으며 보통 공짜 건강관리를 받는다. 개발도상국에서 극단적인 빈곤 속에서 살고 있는 14억의 사람들은 절대적인 기준에서 빈곤하다.
[싱어, 『실천 윤리학』]
3. 귀사는 타 교재 정정 신청 과정에서 이미 저의 주장에 인정하였습니다.
2025학년도 EBS Final 모의고사 생활과 윤리의 문항과 관련된 내용 정정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귀사는 이미 싱어에게 ‘상대적 빈곤에 처한 개인들에게는 원조의 의무가 없다’는 언급을 한 이력이 있습니다.
… 싱어는 빈곤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원조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 경우 중 하나가 어떤 사람이 절대 빈곤이 아니라 상대적 빈곤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입니다. 자신의 저서에서 “절대 빈곤국에 사는 사람들의 수를 줄이는 것은 분명 적당한 집에 사는 다른 사람들에게 궁전에 사는 사람들이 야기한 상대적인 빈곤을 줄이는 것보다 더 절박하고 우선적인 일이다”라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
[EBS, 「EBS 2025학년도 FINAL 실전모의고사 사회탐구영역 생활과 윤리 교재 정정 신청 답변서」 中, 2024. 05. 13.]
4. 귀사의 해당 표현에 대해 추측해보겠습니다.
귀사는 싱어에 있어 절대 빈곤에 처한 개인들만이 해외 원조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고 계실 수 밖에 없습니다. 싱어의 해외 원조 이론에 있어 매우 기초적인 개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해당 표현에 대해 추측하자면, 과거부터 쭉 그대로 사용되오던 해당 표현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절대 빈곤에 처한 사람들’의 의미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하지만 타 교과에서 학습하는 ‘주관적 가난’과 같이 ‘가난’이라는 표현이 지극히 주관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만큼, 해당 표현을 보다 명료한 표현으로 바꾸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가난
「명사」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함. 또는 그런 상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끝)
위의 내용을 EBS측에 전달하였고, 아래와 같이 답변이 왔습니다.
정정 요청 의견에서 지적한 것처럼 싱어는 “실천 윤리학”에서 명시적으로 절대 빈곤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도울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고, “효율적 이타주의자”에서도 절대 빈곤에 처한 개발도상국의 빈민에 대한 원조를 강조하였습니다. 따라서 ‘세계의 절대 빈곤에 처한 모든 사람’이라는 표현을 제안해 주신 취지를 이해합니다. 다만 현재 내용이 완전한 오류는 아니라는 점과. 수능이 임박한 상황에서 연계교재 내용이 수정될 경우 수험생들에게 오히려 더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내년 교재 집필 시 반영하고자 합니다. 향후 더욱 정확한 서술을 위해 집필에 힘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정 신청서에 따른 EBS 답변]
아래의 내용 이전의 내용이 있었는데, ‘가난한 사람’이라는 표현이 싱어의 해외 원조 대상으로 ‘허용 가능하다’는 근거였습니다. 하지만 해당 근거들에서 제시한 “넉넉한 양식과 깨끗한 식수, 비바람을 피할 보금자리, 기본적인 의료 혜택을 얻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 (싱어 저, “세계화의 윤리”)” 역시 싱어의 입장에서 ‘절대 빈곤에 처한 사람들’이며, 근거로서 타당성이 부족합니다.
수험생들에게 혼란을 야기하지 않기 위해 ‘수정이 필요함’에도 올해 교재에는 반영하지 않겠다는 결론이 어떻게 도출될 수 있는지 참으로 의문입니다.
학생분들은 이 상황을 숙지하셔서, 싱어의 해외 원조론에서 해외 원조의 대상은 모든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절대 빈곤에 처한 사람들임을 알고 계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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