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강사 [1201705] · MS 2022 · 쪽지

2024-12-19 22:5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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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문학에 있어 직접 소설을 써보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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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직접 쓴 소설입니다.




"1300만 원 있으십니까?" 던이 손바닥을 던지며 말했다. 올라오는 패들 속에서 망설임이 느껴진다. 경매를 진행하고 있는 작품은 스위스 출신 프랑스 상징주의 화가 카를로스 슈바베의 <묘지 파는 인부의 죽음> , 인생의 덧없음과 죽음의 불가피성을 나타내는 작품이다. 아무래도 그림을 직접 보고 있으면 직접적인 죽음이 연상된다. 그것도 고독하고 깊숙한 구덩이 속의 묻힘. 패들에서 주춤거림이 느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겠지,라고 생각한 던은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필연적으로 뒤따라오는 무언가에서 도망이라도 가려는 듯 어딘가 급박함까지 느껴진다.


"1450만 원" 던은 호가를 외치며 경매장 참가자들을 쓱 둘러보았다.


던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찰나의 순간에 짧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 손을 크게 뻗으며 외쳤다. "1억 2500만 원" 방황하며 이지러져있던 내부의 시선들이 집중됐다. 직전의 호가는 미끼였던 것처럼, 던은 너무도 당당하고 뻔뻔스레 호가를 올리기 시작했다. "1억 2500만 원 나왔습니다. 1억 5000만 원. 나왔습니다. 2억 3000만 원. 나왔습니다. 2억 3200만 원."


"2억 3200만 원 낙찰입니다." 던은 기분 좋게 가벨을 경매패드에 내리쳤다.


이 남자에게서는 자신의 기억의 조각을 찾을 수 있을까, 던이 감정실로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파인 남자를 안내하며 생각했다. 이제 퍼즐 한 조각만이 남은 기분이 든다. 메이와 숲벽 속 비밀스럽고 정적인 공간에서 다른 시간대의 자신을 직시하게 되었고 다시 붓을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메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매듭짓기 위해 섬을 떠났다. 여전히 메이의 캐리어는 감정실의 구석에 놓여있다.


던은 감정실에 들어온 남자에게 필요한 고지를 해주었다. 다시 반복이다. "그림을 사야만 했던 이유를 말해주시길 바랍니다. 한 문장 혹은 단어여도 괜찮습니다. 적절치 못한 이유라고 해서 낙찰이 취소가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림을 사야만 했던 이유라.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져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혹시 커피 한잔 드시겠습니까?" 던이 부드럽게 말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60대 전후로 보이는 동양인 남자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정중히 거절했다. "아,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버블티가 있을까요? 소다맛 버블티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커피와 물 외에는 마실 게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던은 말하며 2층 냉장고의 압생트를 떠올렸지만 곧바로 머리를 저으며 생각을 지워버렸다.


"괜히 무리한 부탁을 해서 죄송합니다. 그림을 사야만 했던 이유라 하셨죠? 아들이 생각나서 샀다는 것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 같네요." 타케시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작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허공을 바라보며 돌아오지 않는 누군가를 회상하듯 눈을 감았다.


"이 점수로 널 받아주는 대학이 있을 거 같니?" 타케시가 소파에 앉아 아들의 성적표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반에서 1등이야. 이번에는 나도 열심히 노력했다고."하루토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노력? 한심한 애들이랑 어울려서 공 차고 게임하고 그게 너한테 있어 노력이니? 아빠가 말했잖아 너는 물려받은 머리가 있어서 하면 된다고." 타케시의 언성이 자츰 올라가기 시작했다."지금 네가 입고 있는 옷, 먹는 음식 당연한 거 아니야. 내가 니 나이 때는 새벽부터 신문배달 하면서 공부했어. 내가 너한테 돈 벌어오라고 하니? 그냥 공부만 편하게 하면 되는 거잖아"


"여보, 그만해요. 반에서 1등이면 잘한 거잖아요. 축하를 해주지 못할 망정." 하루토의 어머니가 아들을 안쓰러운 듯 쳐다보며 남편을 말렸다. "아들 잘했어. 축하 기념으로 고기라도 구워 먹을까?"


"꼴통 애들만 모아놓은 반에서 1등 하면 뭐 해. 전교권도 아닌데 니 형을 봐라. 학원 하나 없이 H대에 들어갔는데 넌 뭐 느끼는 게 없니? 이제 너 애 아니야. 나중에 커서 뭐 하려고 그러니?"


"소방관"


"내가 그 얘기 다시는 꺼내지 말라 했지." 타케시는 그렇게 말하며 성적표를 찢어 버리고 개인 서재로 들어갔다. 넓은 거실에는 엄마와 하루토만 남았다.


"엄마가 잘 말해볼게. 엄마는 네가 자랑스러워. 무엇을 하든 엄마는 아들 편인 거 알지?"


"네. 저 저녁은 혼자 나가서 먹고 올게요."


"버블티 마시러 가는 거지? 밥도 좀 챙겨 먹고 그래. 그리고 반 1등 진심으로 축하해, 아들. 카드에 용돈 좀 더 넣어 놀게."


타케시가 잠시 감았던 눈을 뜨며 경매사 던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들은 그럭저럭 점수를 받아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길로 바로 독립을 했습니다. 제 아내와 미리 말을 맞춘 모양이었죠. 사실 아들에게 티는 내지 않았지만 내심 자랑스러웠습니다. 어찌 됐건 이제 어엿한 하나의 사회인의 길로 들어섰으니 말입니다. 제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어릴 때부터 똑똑했어요. 시험만 봤다 하면 항상 전국 단위였죠. 마치 제 어린 시절을 꼭 빼닮은 듯했습니다. 회사를 물려받지 않고 자기만의 사업체를 가지려는 야망까지. 그에 비해 둘째는 조금 모자랐어요. 항상 학교가 마치면 집에 들어와 말없이 방에 들어가 책상에만 앉아있던 첫째와는 다르게 하루터는 항상 친구들을 이끌고 다녔죠. 밤늦게 돌아오면 엄마와 몇 시간씩이나 수다도 떨고 말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둘째 덕에 항상 화목했던 것 같습니다. 접대를 하고 술에 취해 새벽에 집에 들어가면 시간에 상관없이 항상 저를 맞이해 주는 것도 둘째였." 남자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혹시 휴지 한 장 받을 수 있을까요?"


던은 물론이죠,라고 대답하며 정장의 윗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하루토가 대학교에 들어갈 무렵, 5살 위인 형은 졸업을 하기도 전에 사업자를 내고 스타트업팀을 이끌었습니다. 첫째 아들의 얼굴을 본 게 언젠지 가물가물하네요. 두 아들이 모두 독립을 하니 전업주부였던 아내는 많이 외로워했을 겁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면 소박하게라도 아내와 단둘이 여행을 다녀왔죠. 제가 집에 없는 사이에도 둘째는 꾸준히 집을 왔던 모양입니다. 첫 아르바이트비를 탔다고 뷔페를 사준 둘째 이야기를 어찌나 자랑스럽게 말하던지.


아무리 정이 없어 보이는 아버지처럼 보인다 해도 속으로는 몹시 뿌듯했습니다. 공부가 무슨 대수냐, 그냥 이렇게 반듯하게만 자라면 되지, 하고 둘째의 학창 시절 성적으로 나무랐던 일들도 후회가 됐죠. 하루는 사과도 할 겸 미리 예고 없이 둘째의 자취방으로 찾아갔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지 해가 떨어진 시간임에도 둘 째는 집에 없었습니다. 책상에 꽂혀있던 소방공무원 수험서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 뭐야? 아빠 언제부터 와 있었어? 미리 말하지."


"이거 뭐야." 타케시가 소방 수험서 책들을 땅으로 툭 던지며 엄격한 톤으로 말했다. "내가 소방관은 꿈도 꾸지 말라했지. 너 같은 놈이 소방관을 할 수 있을 같아? 책임감도 뭣도 없는 놈이. 한 번만 내 눈에 걸려봐 연을 끊어버릴 테니까."


하루토는 던에게 받은 손수건을 테이블에 조심스레 올려놓고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그대로 아들은 방을 나왔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죠. 저는 아들이 소방관만큼은 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한편으로 아들의 고운 심성과 단단한 책임감이 소방관과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말이죠. 그렇게 위험한 일은 하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아들이 평생 일을 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도 충분할 만큼의 돈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제 아내만큼은 뒤에서 열심히 아들의 꿈을 응원했었습니다. 결국 아들은 당당히도 소방관이 되었죠. 저는 사실 그때까지 아들과 연락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렇게 바르고 착한 아들이니 제가 외면하면 마지못해 소방관의 꿈을 포기할 줄 알았죠. 아들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습니다. 소방관 취임식에 와줄  있냐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타케시의 눈물이 다시 한 방울씩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몰래 본 제복 입은 아들의 모습은 정말 멋졌습니다. 네이비블루 정장에 화이트 셔츠, 제 아들이 세상 그 누구보다 빛나 보였습니다. 저는 사진도 찍지 못 한채 취임식이 끝나기 전 다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아마 아들은 제가 취임식에 왔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타케시는 먼저 집에 돌아와 있었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아내가 들어왔다. "여보, 그래도 그렇지 취임식인데,하루토가 얼마나 서운해 한 줄 알아요? 티를 안내서 그렇지 밥 먹는 내내 표정이 어두웠다고요."


"걔 인생이야. 앞으로 그 자식 얘기 꺼내지도 마" 타케시가 괜히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진심은 아닐 것이다. 몇 년을 같이 보내온 아내라도 속마음을 들킨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몰래 왔었죠? 당신이랑 보낸 세월이 몇 년인데. 우리끼리라도 조촐하게 파티해요. 둘째의 앞날을 위해서." 아내가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부엌으로 향했고 타케시도 못 이기는 척 아내를 따라갔다.


던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자신에게 부모가 있었더라면 그림을 그리는 자신을 응원했을까, 혹은 돈벌이가 힘들다고 반대를 했을까. 어느 쪽이든 좋았을 것이다. 자신에게는 응원을 하는 엄마도, 반대하는 아빠도 없없으니 말이다.


"13년 전 아들이 죽었습니다. 화재 현장에서 말이죠. 그러고 보니 저는 아들을 인정해 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첫째와 비교만 하고 끝끝내 외면했으니 말입니다. 아들이 죽고 아내는 지금 병원에 누워있습니다. 최근까지 집에 돌아가 모든 불을 끄고 가만히, 몇 시간이고 술을 마셨습니다. 어떠한 빛도 없기에 시간감각도 공간감각도 없는 그런 공간입니다. 오로지 손끝의 감각만을 이용해 잔도 없이 술병째로 압생트를 마시곤 했습니다." 노인은 잠시 말을 멈추고 다시 던의 손수건을 다시 집어 들어 눈가로 가져갔다. 그리곤 눈물을 참으려는 듯 눈을 감고 다시 회상에 잠겼다.


거실 속 고급 소파에 앉아 심해와 같은 어둠 속에서 타케시는 술병을 다시 들기 위해 손을 뻗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술병이 느껴지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현관 쪽을 바라보았지만 오로지 쓸쓸한 어둠뿐이다. 은은하게 거실을 채웠던 압생트의 쑥향마저 희미해져 가던 순간, 고요한 달빛이 들어왔다. 집안에 빛이 들어올 공간은 없었기에 꿈인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몇백억을 주고 산 집이니 방음뿐 아니라 빛의 차단 또한 버튼 하나면 완벽하기 때문이다.  


"아빠" 타케시의 귀에 음성이 흘러 들어왔다.


"아들? 아들이야?" 타케시는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아들의 모습을 찾았다. 하지만 거실 한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비추는 달빛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에 불을 켜려 손을 뻗었다. 있어야 할 스위치는 만져지지 않았다.


"아빠, 너무 힘들어하지 마.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줄 알았으면 아빠말대로 소방관 따위 진작에 그만둘걸. 다 내 잘못이야."


하루토의 나지막한 음성만이 들려왔다.


"내가 왜 소방관이 되고 싶었는지 알아? 내가 초등학교에 올라갈 무렵, 집 근처로 외식하러 가던 길에 버블티 집에서 화재가 났잖아. 나는 옆 가게로 뛰어들어가  가지고 온 소화기를 멋모르고 뿌려댔고. 그리고 소방차가 도착하고 화재는 진압됐었지. 그때 아빠가 뭐라 말한 지 기억해?"


다 기억난다. 지금이야말로 또렷하게 기억난다. 지금까지 어떻게 잊고 있었을까, 하고 타케시가 메어오는 입을 열어 열었다. 가슴속에서 무언가 계속 부글부글 끓는다. 터져버릴 듯한 가슴을 꾸역꾸역 억누르며 말한다.


"역시 우리 아들이야, 훌륭한 소방관이 되겠네."


무언가 터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눈물이 마구 새어 나왔다. 보이지 않는 아들을 찾으려 일어나 여기저기 걸어보지만 거리감각이 없는 새까만 어둠 속에서 달빛 주위만을 맴돌 뿐이다. 던은 자리에서 일어나 휴지를 더 들고 왔다. 아까 건네준 손수건은 이미 다 젖어버렸기 때문에 새로운 휴지가 필요했다.


"저는 못난 아빠입니다. 아들이 왜 매일 버블티를 마셨는지, 소방관이 되려 했는지, 아들을 잃고 나서야 알게 된 것입니다."


"소방관을 택한 아들이 원망스러우신가요?"


 "아뇨. 누구보다 소방관다운 자랑스운 제 아들입니다."


던은 끊임없이 눈물을 닦는 남자를 뒤로 한채 말없이 테이블 위의 그림을 쳐다보았다. 자신이 파 온 구덩이에서 죽음을 맞닥뜨린 노인. 남자는 저 노인을 보고 누구를 떠올리는 걸까. 아들이 죽고 나서야 공백의 기억을 마주한 자신인가 혹은 아버지의 인정받은 후부터 소방관, 한 길로만 달린 끝끝내 화재 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들인가.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감정실에 앉아있는 자신은 어디까지나 미술품과 사람을 이어주는 평범한 중개인일 뿐이다.


"그래도 아버지가 제 취임식에 와주셔서 너무 기뻤습니다. 어머니와 식사를 할 때도 눈물을 참으려 계속 고개만 숙이고 있었죠. 쑥쓰럽네요.


아쉽지만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술은 그만 드시고요. 사랑해요 아버지. 사랑해 아빠"


던은 파도같은 거대한 불길 속에 잿빛의 기둥에 깔려 자신을 소방관에게 건네는 아버지의 눈길을 떠올리고 동시에 잠시 머뭇거리며 자신을 받아든 젊은 소방관의 눈동자를 떠올렸다. 한치의 망설임조차 찾아볼 수 없는 곧은 눈동자였다. 자신을 몇 대의 소방차 앞에 모인 사람들에게 맡긴 후, 소다맛 버블티를 입에 머금고 아직 사람이 더 있어요, 라는 말과 만류하는 동료들의 손을 뿌리치고, 쌓아올릴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거대한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소방관의 뒷모습. 그 소방관의 이름이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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