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킴 [537476] · MS 2014 · 쪽지

2016-04-23 00: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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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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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는 어머니를 죽였다.


 본래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그의 가정엔 아무 싸움도 없었으며, 그날 아침에도 P는 어머니와 같이 TV를 보며 과일을 나누어 먹었다.

 어머니의 시체는 부엌의 식탁과 가스레인지 사이에 있었다. 깨진 두개골 조각이 피와 뇌수에 범벅이 되어 여기저기 끈덕지게 흩어져있다. 그는 으깨진 두개골 사이에 손가락을 넣어본다. 소름이 끼쳐 바로 뺀다. P는 재빠르게 화장실로 들어간다. 옷을 벗어 욕조에 놔두고, 샤워를 한다. 식은땀이 흐르며 긴장되었던 몸에 따스한 물을 부으니 노래가 절로 나온다.

'죄책감은 느껴지니 난 양심이 있는 거야.'

 멋진 변명이다.

 P는 옷을 갈아입고 모자를 쓰고 집 밖으로 나선다. 단지 어머니의 시체와 함께 거실에 있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공포에 도망치려는 게 아닌, 다른 것이었다.

 P는 그의 친구가 사는 하숙집으로 향한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살갑게 대해준다. P도 신사처럼 살짝 미소 짓는다. 친구는 방은 술 냄새가 난다. 매트리스 위에서 P의 친구는 자고 있다. P는 친구를 깨우지 않고, 다시 나간다. 아주머니가 다시 살갑게 대해준다. P도 신사처럼 살짝 미소 짓는다.

 P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다시 보니 가스밸브가 열려있었다. P는 가스밸브를 잠그러 식탁으로 이동하다가, 발에 어머니의 시체가 채인다. 살짝 쳐다봤지만, 미동도 없었다. 가스밸브를 잠근다. P는 베란다로 가서 조립식 빨래건조대를 해체하기 시작한다. 문득, 빨래가 걸린 긴 쇠막대기를 잡고, 빨래를 털어낸다. 모자를 쓰고 다시 바깥으로 향한다. 쇠막대기가 가벼워 기분이 좋다. 계단을 내려가는 P의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P, 어딜 그렇게 즐겁게 가?"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요."

 살짝 미소 지으며 P는 집주인에게 말한다.

 "나중에 아버지랑 같이 술 한 잔 하자. 내랑 너네랑은 같은 동문이니까 볼 때마다 그 뭐랄까 동지감이라는 게 막 생기는 것 같어. 친 아들내미 같단 말이야."

 P는 아무 말도 않고 층계를 쳐다본다.

 "아무튼, 잘 갔다 와라."

 "."

 P는 멀리 가는 척 하다가 다시 뒤로 돌아 집주인이 계단을 오르는 것을 훔쳐본다. 그는 쇠막대기를 세게 쥔다. 그리곤 집주인의 차 뒷 유리창을 깬다. 날카로운 경보음이 동리를 울린다. P는 쇠막대기를 저 멀리 던져버린다. 집주인이 허둥지둥 내려온다. P는 그 모습이 마치 돼지 같아 슬쩍 비웃는다.

"시방, 뭐여 이게."

 "잡을라 했는데 못 잡았어요."

 P는 헐떡이는 연기를 하며 말한다. 집주인의 의심스런 눈초리는 P를 향했지만, 깨진 유리창이 제일이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저 이만."

 P는 다시 갈 길을 간다. 집주인 아저씨는 P를 향해 무어라 말을 했지만 P는 안 듣는다. 들리긴 하였으나 바로 기억에서 지워버린다. 집주인이 다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떡집의 트럭 뒤에 몰래 숨어 지켜본다. P는 뒤통수가 짜릿했다. 아둥바둥 하며 전활 걸고, 떵떵 소리치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며 웃는다.

 '항렬 하나 높은 게 뭐 대수라고...'

 P는 단상을 하고 뒤로 돌아 시내로 향한다.

 이제 곧 해가 저물어 갈 시간이다. 그가 시내에 도착할 때엔 해가 완전히 진다.

 P는 화려한 산호 군락 속에 뒤섞인다. 딱히 할 것은 없었다. 정한 것도 없었고, 원하는 것도 없었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렇게 한참을 걸으니, 낯선 거리를 직면한다. 왼쪽 발목 위 근육이 아프다. 집에 돌아가기로 한다.

 '죄책감은 느꼈으니 난 양심은 있다.‘

 새벽 즈음 되었을까, P는 집 앞에 도착한다. 경찰차 2대가 서있다. 두 경찰관이 P에게 다가와 수갑을 채우며 무어라고 한다. P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경찰차는 뒷좌석에 손잡이가 없구나.’

 P는 신기해한다. 본래엔 손잡이가 있어야 할 민둥하니 어색한 부분을 반히 본다. 차가 멈추고, P는 꺼내어진다.

 사거리 앞에서 어떤 아줌마가 큰 소리로 욕을 하고 있다.

 "너 어리면 다냐? 스무살이면 다 야? 이 미친년아 이 육실헐년...“

 이 말을 반복해서 소리치고 있다. 당연히 P와 경찰관들 모두 쳐다본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는 사거리에서부터 경찰관 앞까지 소리치며 걸어온다. 밤늦은 새벽에 큰 소리로 명확한 대상도 없이 욕을 하며 걸어 다니는데 정말 누가 미쳤는지. 그 아주머니를 화나게 한 사람이 미쳤는지, 아주머니가 미쳤는지. 아니면 남의 일에 대해 이 정도까지 상상하는 P가 미쳤는지.

 갑자기 P는 유리된다. 옆의 빠른 흐름을 본다. 보도블록의 일렁이는 물결무늬를 따라 고개를 흔든다. 경찰관은 아주머니를 말린다.

 P, 잠시, 머뭇거린다. 급류가 손짓한다. 연석에 걸터앉는다. 발을 도로에 담근다. 때마침 몰려오는 무지근한, 하지만 기민한 급류가, 부닥친다.


 두 개의 향이 목을 탁 꺾으며, 무너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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