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재수에 대하여
7년간 우울증을 앓고 있고, 반수해서 25 수능 친 사람입니다.
혹여 제가 반수생활을 하며 느꼈던 것들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글 써봅니다.
(+수정
우울증을 달고 좋은 성적을 내는 법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라
우울증을 달고 견뎌내는 법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우선 제 이야기를 해 보자면
굉장히 강압적인 집안에서 살아왔습니다.
맞는 것보다 더 아팠던 것은 수없이 들어왔던 폭언이었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나가 죽으라, 너는 병신이다 라는 소리를 수없이 듣게 되니
언젠가부터 전 저를 나가 죽어야 할 사람, 사람 노릇도 못할 쓰레기로
그렇게 스스로 규정하고 있었고요.
어릴 때부터 이어진 자1살, 자1해 행위가 고쳐지질 않고
스트레스로 쓰러지기도 하고...
여튼 경증으로 생각될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제가 반수를 결심할 때 가장 고민했던 건
'이런 내가 반수 생활을 견뎌낼 수 있나?' 였습니다.
그냥 살아도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이 거지같은 병을 달고도
과연 내가 재수 생활에 충실하며 살아갈 수 있나,
재수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나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했냐고요?
저는 반수를 시작하면서 딱 2가지 목표를 잡았습니다.
1. 성적상승
2. 나약한 나를 이겨내기
걸핏하면 죽음을 생각하던 저의 습관을 역으로 이용했습니다.
이 둘중에 하나라도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냥 죽겠다
사실 제 성적은 처참히 망했습니다.
최저만 바라보고 공부했던 작수와 비슷한 성적이 나와버렸으니까요.
다만 두번째 목표는 성공했습니다.
제가 해낸 모든 일들을 스스로 폄하하고, 스스로에게만 엄격하게 굴었던 제가
'그래도 이만하면 충분한 노력을 했다'라고 인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3, 14시간의 순공을 찍던 순수한 '공부에서의 노력' 도 있겠지만
평생을 남들에게 징징거리며 살다가 홀로 견디려 아등바등 애쓰고
완벽을 추구하던 제가 '쉼의 중요성' 을 느끼고 일주일 중 하루는 쉬겠다! 결정하며
인생 처음으로 제 스스로에게 '오늘 하루 잘했다' 고 토닥여주는 날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렇게 어느 순간
'어, 나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라고 느꼈습니다.
초반엔 하루치 공부를 끝내고 우는 데 시간을 쏟던 제가
제 내면적 성장에서 얻는 만족감을 원동력 삼아 공부에 집중했고,
참담한 결과를 보고도 꽤나 빨리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결국
제가 반수 초장에 잡은 목표가
'성적' 단 하나뿐이 아니었기 때문이겠죠.
약 6개월의 시간 동안
우느라 바쁘고, 걱정하느라 바쁘던 삶에서
공부 하나에 몰두하는 시간을 가지며
내가 이만큼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나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병신은 아니었구나....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7년 간의 아픔이 어느 정도 호전되었다고 느꼈을 때 찾아왔던 행복과
이렇게 서서히 나아갈 수 있겠다는 희망이
제 재수 생활을 견뎌내게 했던 가장 중요한 요소였으며
현재, 이 행복과 희망이 절 여전히 살아내게 만들고 있습니다.
말이 너무 길었네요.
결론적으로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1번의 목표도 중요하지만,
2번의 목표도 꼭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쉽진 않겠지만
성적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조금은 덜어놓고
이 재수, 혹은 반수의 시간은
내가 내면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시간이다고,
그렇게 목표를 잡고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결과론적으론 망한 케이스지만,
두 번째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기대를 재수생활의 원동력으로 삼고
그 집중한 과정을 근거로 스스로를 토닥이고, 칭찬하며 내면적으로 성장하기.
이 선순환이 반복된다면
어쩌면 여러분은 이런 방식으로 성공한 케이스를 만들어내실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재수나 반수, 그걸 넘어 n수는 정말 쉽지 않은 시간입니다.
특히 우울증을 앓고 계시는 분들에겐 더더욱요.
지금까지 드린 말씀 또한 어쨌든 저 하나의 과정과 결과이니,
이렇게 해서 우울증을 달고도 재수 생활을 무사히 해낼 수 있을지는 장담 못하는 게 맞습니다.
그래도,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으로서
누군가에게는 이 글이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별개로,
용기 내어 재수에 도전한 모든 분들에게 고생하셨다고,
또한 용기 내어 도전할 모든 분들께 응원한다고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물론 개인 능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른 류의 의사도 분명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
연세대 의대 (일반의로) vs 연세대 치대라면 뭐가 나을까요? 10
의대를 일반의로 가고싶다면 뭐가 나을가요?
-
여자분은 현재 공기업를 다니고 있는데 의사 선생님과 선을 봄 의사 선생님 사귀자고...
-
등록금도 타대보다 비싼데 책값도 꽤든다해서 궁금해 문의드려봅니다. 등록금, 생활비...
-
조선대 의대 3
언제 발표하나요 대략 컷예상.ㅠㅠ
-
사촌동생이 국어 수학 화1 생2 124 130 99 95 비교내신 인데 한양대...
-
정시의치대 0
정시 의치대가 힘들긴 한가봅니다 생각보다 높은 점수라 부모님 과 저는 될줄알고...
-
의대 치대 공부량 차이에 대한 글이 종종 보이는데 서로 싸우고 말이 많네요. 치대...
-
메이저의대 어디쓸지 고민하는 최상위권학생에게 도움 주고자 글씀. 서울대 : 지존....
-
고속성장님 분석기 어디서볼수있나요?
-
경희치 혹시 예비 몇번까지 돌았나요??
-
지방치전원 (전남대,부산대) 등록금 많이 비싼가요? 7
저버원광대랑 고민중인데 등록금이 거의 1.5배라는게 진짠가요? 저번에 어떤분이...
-
한림의 추합 2
몇번정도 까지 돌앗나요 ㅠㅠ
-
연치 vs 지거국의 40
선택장애 ㅠ.ㅠ
-
윤도영 올어바웃 생1,화1 듣고 있는데 이론들으면서 풀만한 문제집 추천해주세요. 1
강의들으면서 풀만한 어렵지않은 문제 추천부탁드려요. 화1 생1 모두 추천해주세요!!
-
지거국은 아닌데 입결이 더 높은거같아서요. 이유가 있나요?? 그리고 525로...
-
수학 27번을 틀린관계로 88점이 나와서 매우 고생하고 있는 이과생입니다 ㅠㅠ...
-
입학처 가보니까 14일이였는데 9일이 발표일이라 하더라고요. 그래서 합불합알라보려고...
-
지방치 가능할까요??ㅠㅠ
-
울대 vs 성대 10
그냥 궁금해서.... 만약 쓴다면 울대랑 성대랑 둘중 어딜 쓰실껀가요??
-
경희대치대는 광탈이겠죠..? 부산대치대와 경북대치대 같은 경우는 입결점수가 아니라...
-
치대 라인 부탁드려요ㅠㅠ 또는 지방대의대도 괜찮아요
-
언제 나오는지 아시는 분?
-
간절합니다.
-
대충 그정도 되나요?
-
11111 화1 생1 현역 고3 수능 후기.txt 13
심심해서 한번 써봅니다ㅎㅎ 음슴체는 이해해주세용 필자는 의대 수시충이라서 최저 3개...
-
부탁드립니다.ㅜㅜ
-
이 정도면 지방치 가능할까요?
-
국어98 수학84 영어94 화146 생143
-
국 수 영 화1 지1 98 88 97 46 48 수학을 너무 망했네요ㅜㅜ 어느정도 될까요..?
-
본4입니다. 실기치고 오니 오랜만에 오르비 들어오는게 재미있네요ㅋ의대에 대해 궁금한...
-
원점수 380이가능? 390되어야지 안정인가
-
전 제가 아니라 제 손이 품
-
의대에 다시 관심이 생긴 94년생입니다. 어떡해야할까요ㅜㅜ 10
원래는 연구원을 할 생각이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의대를 가고 싶어졌습니다. 그...
-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오르비 신촌점에서 멘토를 맡게된 물만두입니다. 저는 연세대...
-
원점수 16점 차이가 표점 5점차이로 될 수도 있군요. 2
친한친구 2명얘기인데 한명은 화1 생1으로 원점수 370을 받았고 (91 100...
-
pdf 다운받을 수 있는 사이트 아시는 분 있나요?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어요..
-
일반 어디점수 지금 돌고있나요 동국의전 추합전화 25일까지 맞나요? 부탁합니다ㅠㅠㅠㅠㅠ
-
★[동국의전]동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학석사통합과정 신입생 카페★ 0
동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학석사 통합과정 예과 학생회입니다.먼저 합격하신 16학번...
-
ㅈㄱㄴ
-
ㅈㄱㄴ
-
음... 오르비에 올리기엔 적절하지않은것같지만 의사나 의대생이 많으신거서같아서...
-
정책을 우선 순위로 두고 좋다 안 좋다 하시는 지? 아님 고령화 사회 등 사회...
-
한의대 과탐 과목 14
한의대 목표로 공부할 건데요 과탐과목 선택이 고민입니다. 생2는 무조건 할거구요...
-
대략 몇번정도까지 도나요?
-
대학별 의대 sci논문 수 비교를 통한 연구역량을 살펴보았습니다 10
의대에서 환자를 치유하는 의료행위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것도 중요하지만,...
-
결국 붙었네요ㅜㅜ 남은분들도 좋은 결과 있기를 기도합니다!
-
한림의 합격했습니다.(현역 14134, 재수 21121) 21
처음 재수할때는 정말 암울했었는데.. 괜찮은 결실을 맺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남은...
-
수기는 간단하게 쓰겠습니다.먼저,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 재수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고생하셨네요ㅠㅠ
강압적인 집안, 폭력, 욕설을 가족들한테 당했다는게 너무 가슴 아파요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시간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ㅋㅋㅋ 언젠가는 다 지나간 일이 되겠죠
긴 글인데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정성추
저도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둘 다 앓고 있어요..!! 너무 길어서 읽긴 불편하시겠지만 도움 되셨으면 좋겠네요
혹시 견뎌냄에 있어 외적인 도움도 받으셨을까요? 예로 정신과와 같은 그런...
약 부작용(메스꺼움과 특히 졸음..)이 고등학교 성적에 악영향을 끼쳤던 기억 때문에 반수 할 땐 아예 안 먹었습니다.
(고3 들어가기 전에 멋대로 단약해버렸습니다. 약 먹는 동안 신체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보통은 처음 약 먹고 1~2달 정도 지나면 부작용 괜찮아지니 드실거라면 본격적으로 재수 시작하기 전에 미리 먹으면서 적응하시는 거 추천드려요
저는 거의 모든 약의 부작용을 심하게 받는 희귀케이스라 이런 경우는 드물겁니다.
이외 상담같은 건 받아본 적 없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면 그만 둬야 합니다" 라고 말씀해주시면
"그게 됐으면 진작에 나았겠지...." 이런 식으로 생각해버려서....
모든 말을 삐딱하게 들어버리니까 스스로 생각을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별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