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은허접해도꿈만은 [36208] · MS 2003 · 쪽지

2007-03-03 18: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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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은 허접해도 꿈만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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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망의 11월,,,  

드디어 11월이 되었다,,, 세 번째 수능이 다가오고 있었다,,, 벌써 2년의 세월이 지났다니,,, 꿈만 같았다,,, \'세월은 왜 이렇게 빠른걸까\' 하는 생각을 항상 하면서 도서관 옥상에서 쉴 때마다 공상을 하곤했다,,, 이제 2주 후에 내가 고려대 법대를 갈 수 있을지 없을지가 판가름이 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하루는 아침에 모의고사를 풀다가 힘겨워 머리를 식히려고 도서관 옥상으로 올라갔었다. 옥상에서 앞에 흐르는 강과 반대편에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벌써 늦가을인지라 낙엽이 많이 떨어져 있었고 여름에 범람하던 그 강물들은 메말라서 흐름이 지체되고 있었다. 나홀로 옥상에 서서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았다. 고3 때 열람실에서 땀흘리며 공부한 시절,,, 좌절과 고통의 시간이었던 고3 9월,,, 아무런 대학을 갈 수 없었던 성적을 받았던 고3 9월 모의평가,,,

그러나 공부 방법을 수정하고 열심히 하여서 수능에 가서 노력도 노력이지만 운까지 보태어져서 나에게 어떻게 보면 과분했던 경희대 법대를 간 일,,, 그리고 경희대를 그만 두고 고려대를 향해 뒤늦게 반수를 하여서 비록 실패하였지만 한양대 법대를 간 일,,, 그리고 한양대 법대를 등록조차 안하고 배수진을 치고 시작했던 삼수 초기,,, 그리고 중기,,, 그리고 지금까지,,, 고2 때까지 뻘짓을 하면서 젊음이라는 너무나도 소중한 것을 너무나도 쉽게 쓰레기 같은 곳에 허비하였다. 공부를 할 수 있을 시기에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렇게 늦게 깨달아서 이렇게 힘들고 외로운 시간들을 혼자서 보내야 했다. 하지만 후회는 전혀 없었다. 뒤늦게 깨달은 공부의 맛은 게임을 할 때의 그 무엇보다 더 달았고 나는 그 공부라는 것은 정말 잘 하고 싶었다. 그 공부라는 것을 잘 해서 나의 꿈인 고려대 캠퍼스를 밟아보고 싶었다,,,

10월 종로에서 비록 패배하였지만 9월 달과 10월 교육청은 나름대로 느낌이 좋았다. 그 기세를 다시 한 번 몰아서 11월 2일 대성모의고사를 치르게 된다. 그 결과는 언어 93, 수학 85, 영어 92, 사탐 185점으로 455점이었다,,,! 이 역시 11월달 시험인지라 성적처리를 하지 않아서 성적표가 없음이 안타깝다. 시험이 11월 달에 치렀던 그런 시험들처럼 쉬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잘 본 거 같았다. 나중에 대성 홈페이지 가서 등급 나온것과 내 점수를 비교해보니까 언어 1등급, 수학 1등급, 외국어는 2등급이었다,,, 듣기를 3개나 틀렸다 젠장,,,ㅡㅡ 다 개인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사설 듣기 만점을 받은 게 10월 26일 종로에서 한 번 인걸로 기억한다.

잠깐 영어듣기에 대해서 언급하고 가겠다. 영어듣기를 딕테이션 (받아쓰기)를 많이 하면 잘 할 수 있다고 하여서 반수 때와 삼수 초기에 2권을 받아쓰기를 하였지만 전국연합이나 평가원, 수능은 괜찮게 봤고 사설만 영어듣기가 잘 안되었다. 받아쓰기를 하면 틀리는 것은 주어가 단수라서 동사에 -S를 붙이고 뭐 이런 정도였고 받아쓰기는 잘했다. 그런데도 크게 진보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영어듣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흐름\'이다. 이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무리 부분적으로 받아쓰는 받아쓰기를 정확하게 할 수 있더라도 \'흐름\'을 놓쳐서 이해를 하지 못 한다면 틀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영어듣기는 문법 + 어휘 -> 독해 -> 듣기 순으로 진행되는 영어공부에서 마지막 단계이다. 앞에 것을 잘 하지 못하면 절대로 아무리 들어도 한계가 있다. 듣기는 지문을 \'읽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대망의 450점대를 돌파했지만 수학을 100점을 받지 못했다,,, 대성 문제를 살펴보니까 내 머리로 정말 풀 수 없는 문제가 2개 있었고 풀 수 있는 것은 4점짜리 2개였다. 풀 수 있는 것은 다 맞아야 한다. 그래야지만 고려대 법대를 갈 수 있었다,,, 1등급이면 뭘하는가,,, 점수가 언수외를 29.8%씩 보는 고려대에는 수학 점수가 매우 중요했다,,,!

11월 8일 중앙 모의고사를 치렀다.

▲ 11월 8일, 수능 시험을 치르기 전에 마지막으로 중앙 모의고사를 보게 된다. 이 시험에서 나는 역대 최고 기록인 468점을 받게 된다.

중앙모의고사 결과는 정말 대박이었다. 물론 오르비에 가보니까 쉽게 나왔다고 했지만 나에게 이런 점수 자체가 감지덕지였다,,, 언어 95점, 수학 92점, 외국어 92점, 국사 50점, 근현대사 48점, 경제 47점, 사회문화 44점으로 총점 468점을 받다니,,, 특히 언어가 물이 올랐다,,, 끊임없는 독서를 통해서 이제 1등급은 꽉 잡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의외의 결과는 수학에서 나왔는데 92점을 받았다. 나머지 2문제는 시험을 치르면서 못 풀어서 찍은 것들이었는데 다 틀렸다. 시험이 끝나고 몇 일 안에 다시 풀도록 노력했지만 풀지 못해서 답지를 보니까 내 머리를 벗어난 문제였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노력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그런 문제들이 수능에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래야만 했다.

가채점표를 내면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언수외 점수가 279점이었다. 수능은 사설보다 더 명쾌하고 깔끔할 테니까 지금까지 해온 노력과 향상된 나의 실력을 감안하고 거기다 운까지 더한다면 고려대를 갈 수 있는 언수외 290점대는 상상의 점수가 아니었다. 실제로 9월 모의평가에서 물론 운이 가미되었다지만 언수외 293점을 받지 않았던가,,,!

남은 일주일, 차근차근 마무리를 해갔다. 수학모의고사는 매일 2회씩 풀면서 감을 놓지 않았다. 내 수학적 머리의 한계까지 닿아야만 수능에서 어떻게든지 승부를 봐서 점수가 잘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묵묵하게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최선을 다해서 공부를 해 나갔다,,,

2006년 11월 22일,,, 수능예비소집일이 다가왔다,, 예비소집을 갔다 오고 나서 또 오르비질을 했다,,, 이제 수능 예비소집일날 이렇게 오르비질 하는 것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세월이 참 빠르다는 것을 느꼈다,,, 수험생이 할 수 있다는 마지노선인 삼수까지 이렇게 거쳐오다니,,, 세월이 빠르다는 것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다시 학교로 갔다. 그리고 수능을 앞두고 쓰는 마지막 일기를 쓰게 된다,,


▲ 수능 하루 전 학교 열람실에서 쓴 일기,,, 내일의 승리를 다짐하면서,,, 마지막 일기를 열람실에서 썼다.

10시쯤에 학교에서 나오면서 수위 아저씨께 인사를 드리고 또 격려를 받았다. 내가 고3 때 우리 학교에 처음 오신 수위 아저씨와 벌써 3년째 이렇게 수능 전날에 인사를 드리고 또 격려를 받았다는 것이 그저 신기했다,,, 횟수로 치면 5년은 모교에서 보냈다,,, 지난 삶에 대한 후회가 너무나 커서 다시 고등학생이 되고 싶었고 또 그렇게 원하는 대로 고등학교를 다시 다니면서 원없이 공부를 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이제 모든 것은 내일의 운과 컨디션과 이때까지 쌓은 노력과 또 그 노력을 통해서 바뀐 나의 머리에 달려 있었다,,, 내일의 승리를 위해서 일찍 잠을 청했다,, 역시 불면증으로 빨리 잠은 들지 못했다,,, 그리고 깨어났다,,, 언제나 그랬듯이 자동으로,,, 그 날은 바로 2006년 11월 16일이었다,,,!

■ 2006년 11월 16일의 꿈

그 날이 도래했다,,, 올 것 같지 않았던 그 날이 바로 내 눈 앞에, 바로 지금 이 순간 시작되고 있는 것이었다,,, 수능 때만 변함없이 자동으로 6시에 일어났는데 올해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동으로 눈을 뜨고 나서 모든 준비를 갖추고 부모님과 함께 고사장이 있는 학교를 향해 갔다. 시험 고사장은 고3 때 6월 모의평가를 치뤘던 학교였다. 그 당시 평가원에서 미리 수능 시험 과정을 테스트 해보려고 모의 시뮬레이션을 했었을 당시 갔던 바로 그 학교였다. 감회가 새로웠다. 차에서 내리면서 부모님께 격려를 받았고 나도 부모님께 대박을 약속 드렸다.

고사장 입구에는 3학년 선생님들이 와 계셨다. 입스타를 구분하는 능력을 가지셨던 그 선생님과 3학년 부장 선생님과 악수를 나누었고 격려를 받았다. 그 동안 열심히 해 온 만큼 나는 최선을 다해서 시험을 잘 칠 자신이 있었다. 올해는 수능대박송을 듣지 않고 나의 내면을 통해서 스스로 자신감을 키웠다. 그리고 마지막 중앙 모의고사가 비록 쉬었다고 했지만 (나는 안 쉬웠는데 오르비에서는 쉽다고 해서,,,ㅡㅡ) 468점을 받았고 9월 모의평가에서 언수외 293점을 받았으므로 고려대 법대를 가는 성적을 받는 것이 이번에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예상했다. 비록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성적이었지만 초인적인 집중력을 통해서 이번 07수능에서 받아내고 싶었다,,, 과외나 학원없이 독학으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른 많은 분들이 이미 입증했지만 내 스스로가 경험해 보고 싶었다.

시험장에 들어서니 역시나 내가 또 거의 꼴지로 도착했다. 교실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교실에서 내 위치는 제일 오른쪽 벽 중간이었는데 3년 연속 벽 중간이 걸려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한 쪽에 벽이 있는 곳을 너무나 좋아했는데 위치 운이 따라준 느낌이었다. 언어영역 시작 전까지 수험표 뒤에다가 오늘 지켜야 할 일들을 계속 적었다. ‘항상 지문을 제대로 정확하게 읽는다, 가볍게 읽지 않는다, 모든 문제에는 항상 근거가 있다.’ 등 자칫 소홀히 할 수 있는 부분을 적어두고 계속 보았다. 그리고 종이 울렸다,,, 드디어 1교시가 시작된 것이었다.

1교시 언어영역 시험지를 받아들었다. 듣기 방송이 나왔는데 차분하게 풀었다. 1번 문제가 또 그림형태의 문제였는데 초집중을 한 상태에서 들어서 그 원리를 알았고 쉽게 풀 수 있었다. 듣기를 다 들었는데 하나도 막힘이 없었다. 11월 달에 생긴 내가 찍은 답이 바로 정답인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쓰기 부문에서 조금 에매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7번 문제였다. 이 문제는 답같은 것을 체크를 해두고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 표시를 해두고 넘어갔다,,, 그런 식으로 계속 문제를 풀어갔다.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 표시를 해 둔 것이 4개 정도 있었다. 일단 그 문제들에 대한 답들은 먼저의 느낌으로 체크를 해 둔 상태였다. 뒤로 가니까 조위의 만분가가 나왔다.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는데 이 때까지 해커 고전문학을 공부하면서 생긴 기본능력으로 승부했다. 시 역시 마찬가지, 처음 본 시들은 이 때까지 내가 독서를 하면서 길러진 풍부한 감성능력으로 느끼면서 풀어나갔다. 시간이 거의 딱 맞았다. 앞에 표시를 해 둔 4개의 문제를 다시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확실히 06수능보다 훨씬 어려운 느낌이 났다. 오전이었지만 손에 땀이 삐질삐질 났는데 빠르게 답안지에 마킹을 하고 시간에 맞춰서 겨우 끝을 냈다,,,

  1교시 언어영역을 끝내고 나서 교실은 난리였다. 밖에서는 학생들이 시험이 어렵다는 것을 하소연 하는 얘기가 마구 들렸고 실제로 우리 교실에 있는 학생들도 시험이 끝나고 나서 아무 말도 못 하는 학생이 절반 어렵다고 하소연 하는 학생이 절반이었다. 속발음을 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나에게 역시 시간을 남기고 언어영역을 푼다는 것은 무리였지만 그래도 시간에 딱 맞춰서 풀었으니 다행으로 생각했다. 우리 반에 모교 현역 전교 1등과  재수생 중에서 본좌후배가 있었는데 둘 다 종이 쳤는데 마킹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선생님이 거둬가는 시간에 맞춰서 겨우 제출한 모습을 보고는 확실히 이번 수능 언어가 어려웠음을 알 수 있었다.

2교시는 바로 수학이었다. 정말 수학,,, 나를 항상 괴롭혀왔던 그 과목,,, 이 수학을 정복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문제를 풀었던가,,, 순수하게 모의고사 문제로만 치면 4천 문제 이상을 이번 년도에 풀었다,,, 그래서 2학기 들어서 10월 교육청 한 번 빼고는 항상 1등급을 받는 기염을 토해냈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은 수학 100점이었다,,, 만약 9월 모의평가처럼 나온다면 수학 100점도 꿈이 아니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2교시 종이 울리고 수학 시험이 시작되었다. 차근차근하게 풀어나갔다,,, 오오,, 앞 부분에 문제들이 다 쉬운 문제들 같았다,,, 확실히 06수능 수학보다는 쉬운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풀다보니까,,, 막히는 것들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06수능과 05수능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이렇게 막히다가 다 찍어버리고 결국 수학을 망쳐버리는 일이 발생할까 두려웠다,,, 약간 시간을 두고 생각해도 발상이 되지 않는 문제는 제쳐두고 풀 수 있는 것만 빠르게 풀어 나갔다. 그러고 나니까 꽤 많은 문제가 남았다. 수리 나형 홀수 기준으로 8번과 12번, 14번, 15번, 16번, 17번, 24번, 25번, 27번을 못 풀었었다. 하지만 남은 시간과 문제의 수를 계산해보니까 남은 시간 안에 다 풀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일단 8번을 다시 풀어보니까 뇌가 활성화 되었는지 풀 수 있었다. 그리고 12번은 유형이 벌써 작년 06수능과 비슷한 문제였는데 침착하게 다시 풀어보니까 이 역시 풀 수 있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7문제,,, 14번부터 하나씩 차례차례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하나도 풀리지 않았다,,, 무려 7문제나 남았는데 말이다,,, 침착하게 필요한 조건을 구해서 풀려고 했건만 도무지 풀리지 않았다. 발상이 되질 않았다,,,17번 문제 같은 경우에는 답을 구했는데 답지에서 답이 없어서 당황하기조차 했다,,, 속으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침착해야 한다,,, 다 풀 수 있는 것들이다,,, 자신감을 가지자,,, 계속 이런 식으로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쉬운 문제들은 너무 쉬웠고 어려운 문제들은 너무 어려운 것 같았다,,, 일단 쉬운 문제들을 빨리 풀어둔 상태라서 안 풀리는 문제들을 계속 붙잡고 끈질기게 풀려고 애를 썼으나,,, 끝까지 남은 7문제 중에서 단 한 문제도 풀리지 않았다,,, 정말 울고 싶었다,,, 손에는 이미 땀이 삐질삐질 흐르고 있었다,,, ‘아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안 된다는 말인가,,,? 정녕 머리가 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는 말인가?’ 시험장에서 정말 눈물이 다 나올려고 했다,,, 순간 울컥해서 눈에 잠깐 눈물이 고일 정도였다,,,

수학에 대해서 한이 맺힌 사람이 나보다 더 한 사람은 아마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 한을 풀기 위해서 하루에 5시간 이상씩 정말 수학만 열심히 파왔다,,, 수학의 핵심이 발상, 즉 수학적 머리에 있는 것임을 깨닫고 그 수학적 머리를 키우고 위해서 4천 문제 이상을 풀어온 삼수시절의 기억이 순간순간 머리 속을 스쳐가고 있었다,,, 남은 7문제 중에 단 1문제도 못 푼 상태에서 남은 시간은 40여분,,, 시간이 나를 옥죄어 오고 있었다,,,

이렇게 헤매고 있던 찰나에,,, 갑자기 27번 문제가 풀렸다. 본능적으로 풀렸다고 해야 옳겠다. 도대체 어떻게 풀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냥 미친듯이 머리를 쥐어짜니까 갑자기 풀렸다고 봐야했다. 왠지 다 풀 수 있을 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새를 몰아서 남은 6문제에 도전했다. 25번부터 거꾸로 남은 문제를 오기로 했는데 25번이 또 금새 풀리기 시작했다. 어떤 과정으로 답을 도출했는지 기억이 안 날정도로 본능적으로 풀고 답을 체크했다.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남은 문제들이 모두 힘겨웠기 때문에 단 한 문제도 남김없이 풀어야만 했다. 24번 문제에서 다시 막히기 시작했다. 2가지 조건을 구해야 하는 것으로 기억나는데 1개의 조건을 구했지만 나머지 1개의 조건이 기억나지 않았다.

머리를 쥐어짰다. 한 손으로는 시험지를 고정하고 펜을 든 손을 오른쪽 머리에 갖다대고 계속 머리로 생각을 했더니 몇 분이 지나서 드디어 풀렸다. 그 과정은 정말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본능적으로 또 풀렸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정말 신기한 경험을 계속 하였다. 나머지 조건 1개를 찾아내었고 문제를 풀 수 있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14, 15, 16, 17번,,, 객관식에서 제일 어렵다는 4점짜리 문제들이 연달아 4개나 몰린 구간을 내가 해결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 역시 거꾸로 17번부터 풀었다,,, 아까 풀었는데 답이 나오지 않는 17번이 희한하게 풀렸다. 그래서 선지를 보니까 내가 구한 답이 바로 선지에 있었다. ‘드디어 해냈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이제 앞으로 3문제가 남았다. 15번 증명문제에서 또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그냥 하려니까 되지 않았다.

그 순간 내 머리를 갑자기 강타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숫자 집어넣기!’ 바로 증명문제를 숫자를 집어넣어서 푸는 것이었다. 숫자를 집어넣어서 끙끙대면서 풀었더니 드디어 답이 나왔다!! 너무나 기뻤다,,,!!와하! 드디어 풀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2문제였다,,, 남은 시간은 10분,,, 2문제를 충분히 풀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안 풀렸던 문제들이 신기하게 연속적으로 풀리는 것으로 보아서 이 문제들도 풀 수 있을 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상은 맞았다, 14번 문제를 제대로 풀었고 선지를 보니까 내가 구한 답이랑 똑같은 숫자가 있었다. 너무나 반가웠다,,,! 그리고 이제 나머지 1개의 문제인 15번이 남아 있었다,,, 문제와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아까 전에도 봤지만 이번에도 역시 이해가 안 갔다,,,

종 치는 시간이 다가 오고 있었다,,, 마킹을 하고 일단 수학 답을 모두 수험표 뒤에 옮겨 적기 시작했다. 다 옮겨 적고 나니까 3분 정도가 남았었다,,, 아 빨리 풀어야 된다. 빨리 풀자,,, 그런데 풀리지를 않았다,,,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결국 종이 울렸고 나는 그 문제를 찍고 찍은 답을 그대로 정답표에 마킹을 했다,,,

정말 진땀이 났던 수학시간이었다,,, 역시 수학은 만만치 않았다,,, 죽도록 노력했지만 역시 수학이라는 놈과의 싸움은 너무나도 숨이 막혔다,,, 체감난이도 상으로는 나에게 06수능과 거의 맞먹는 거 같았다. 다만 쉬운 문제는 너무 쉽고 어려운 문제는 너무 어렵다는 점이 달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느낌이 좋았다,,, 검산 같은 것은 이때까지 수학을 풀어오면서 검산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해서 검산을 하지 못 한 아쉬움 그런 것은 없었고 스트레이트로 마지막에 6문제가 쫙 풀렸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다. 풀고 나서도 직감적으로 왠지 다 맞는 느낌이 났었고,,, 기분이 좋았다,,,! 1문제 찍은 것도 맞기를 기도하면서 그냥 기분 좋게 생각하였다.

삼수를 했던 친구와 같이 만나서 점심을 먹었다, 시험에 대해서 답맞추는 얘기는 안 하고 그냥 이런 저런 지난 세월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다, 김밥을 하나 먹고 따뜻한 보온병에 담긴 물을 마시면서 수학시간에 가졌던 그 긴장을 풀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아리송한 수학 때문에 마음이 약간 불안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불안한 마음을 없애려고 속으로 ‘수학은 100점이다.’라는 거짓주문(?)을 외우기도 했다,,,

이제 3교시 외국어 시험이 시작되었다,,, 창문을 다 닫고 커튼까지 치고 정말 고요한 가운데에서 시험이 시작되었다, 선생님이 시험지를 내주신 즉시 뒤로 돌려서 눈으로 뒷장을 풀었다. 뒷 장 문제는 참으로 쉬웠다. 눈으로 뒷장을 순식간에 풀게 된다. 이제 듣기가 시작되었다. 침착하게 하나씩 들어갔는데 크게 막히는 것은 없었다. 1번 문제는 왠지 많은 사람들이 낚일 꺼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그렇게 16번까지 들었는데 17번을 들을 쯤 갑자기 내 뒤에서 왕파리 소리가 났다,,, 그 고요한 가운데에서 나는 왕파리 소리,,, 환장했다,,, 속으로 제발 좀 딴 쪽으로 가길 빌었다,,, 그런데 그 때 하필 왕파리가 내 쪽으로 지나갔다, 황당했다,,,ㅡㅡ; 17번을 주의 깊게 듣고 있다가 왕파리의 방해 때문에 부분을 듣지 못했다,

이미 지나간 왕파리를 욕할 생각도 못하고 나는 빨리 답을 내리고 다음으로 넘어가야만 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까 피터의 어머니가 아프신 모양이었고 피터가 대신 요리를 해줄 모양이었다, 그 다음에 왕파리가 지나가서 제대로 못 들었는데 aunt라는 단어 밖에 기억이 안났다, 상황을 추리하였다, 그러고 보니까 aunt가 들어간 선지가 2번과 4번 이렇게 2개 있었다, 2번과 4번을 두고 고민을 했는데 4번을 보니까 피터가 지금 아픈 어머니를 위해서 요리를 해줄 상황이었는데 4번의 선지는 피터가 피터의 aunt를 위해서 요리를 하는 식으로 뜻이 나와 있었다. 그래서 4번을 과감하게 지우고 2번을 했다. 2번을 넣어보니까 어머니가 아프고 피터가 대신 요리를 해 줄려고 했는데 그걸 이제 ‘aunt가 와서 해줄려고 이미 정해놨단다‘는 식으로 어머니가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이렇게 왕파리에게 공격당한 17번을, 들었던 지식을 최대한 활용하여 답 아닌 것을 지워서 답을 내고는 18번부터 쭉 풀어 나가게 됐다. 왕파리의 ‘윙~’하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안않았다. 아마도 내가 무아지경의 집중상태가 되어서 그랬던지 왕파리가 다른 쪽을 멤돌았던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아마 전자인 것으로 기억한다, 뭐 둘 다 일수도,,,ㅡㅡ) 쭉쭉 풀어나갔다, 문법문제는 이제 나에게 아무 것도 되지 않았다, 맨투맨 기본영어를 2회독 하고 메가스터디 문법 300제를 통해서 문법에 대한 감각을 극대화한 나는 본능적으로 문법문제를 풀어 나갔다. 그리고 독해 역시 쑥쑥 막힘없이 풀어 나갔다. K교주님에게 강의를 들었을 때처럼 부분적으로 읽지 않고 처음부터 읽다가 답이 나오면 거기까지만 읽고 체크를 했다. 오랜 공부로 나의 영문해석 실력도 상당히 발전되어 있어서 막힘없이 잘 해나갔다. 40번과 44번의 순서를 묻는 문제가 좀 에매한 거 같아서 모든 문제를 다 풀고 그 문제를 정확하게 답을 찾아내는 데에 시간을 할애하였다. 두 문제다 논리적 사고를 발휘해서 답을 내었다. 그리고 마킹을 하고 수험표 뒤에다가 답을 옮겨 적으니까 시간이 거의 딱 맞았다.

외국어 영역이 끝이 났다, 이제 남은 것은 사탐 뿐,,, 사탐은 국사와 근현대사는 교과서를 꼼꼼하게 보면서 정말 이를 갈고 갈았다. 틀릴 수가 없을 정도로 읽었다. 국사는 총 11회독을 하였고 근현대사도 국사만큼 읽었다. 경제와 사회문화는 6월과 9월을 철저히 분석하여 말장난을 최대한 조심하려고 노력했고 9월달에 피본 표분석 문제를 마스터하기 위해서 PSAT 자료해석영역까지 풀어서 자신감이 넘치는 상태였다.

국사부터 시험이 시작되었다. 무난하게 계속 풀었다. 정말 모든 문제가 교과서 안에서 나왔다. 이런 걸 강의를 본다고 해서 만점 받는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 아니 문제가 교과서 안에 있는 지문에서 사료에서 사진에서 나오는데 어떻게 강의를 듣는다고 되는 것이란 말인가? (이 사실은 서울대 새터에 가서 강남대성을 다닌 동기로부터 재확인하였다. 그 친구도 교과서는 전체를 통독한 후 부분적으로 세세하게 외우는 작업을 하였으며 학원의 국사 강의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참고로 그 친구는 원래 잘하는 친구였다 -0-)
아 그런데 국사를 풀다가 3문제가 최종적으로 막혔다. 하나는 5번 문제로서 대가야와 금관가야 지도 문제였는데 A, B 두 나라에 맞는 사실을 제대로 설명한 것을 고르는 문제였다,,, 이 문제를 본 순간 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지도는 내가 보고 있던 너덜너덜한 7차 초판 교과서에는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0- (그 지도가 보라색 개정판 교과서에 있음을 알고 나는 너무나 억울해서 화가 났다,,,)


▲ 바로 그 문제,,, 초판 교과서에 없고 보라색 개정판 교과서에는 지도가 있었다,,, 그저 운명이라고 밖에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1번부터 5번에 있는 사실은 뭐가 대가야이고 뭐가 금관가야인 줄 알았지만 A, B의 나라가 어디가 금관가야고 어디가 대가야인지 몰랐다. 결국 답 같은 것을 찍고 말았다. (이 문제는 결국 틀리고 말았다,,,ㅠㅠ 이 문제를 생각해보니 참으로 운명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다음 문제는 13번 문제였는데 아주 색다른 문제였다. 이 지역이 무엇인지 알아야했는데 읽다 보니까 ‘원래 다인철소였는데’라는 지문이 눈에 들어왔다. 교과서를 11회독한 경험에서 본능적으로 ‘충주 다인철소’ 라는 것이 생각났다. 그러나 그걸 알아도 문제를 풀 수가 없었다 ㅡㅡ; 1~5번의 내용이 이 지역과 관련된 것임을 어떻게 확인할 수가 없었다. 평가원에서 이 문제를 낸 의도가 궁금했다.

그 순간 본능적으로 문제가 풀렸다. 바로 네모 칸 안에 있는 지문과 관련이 없는 것을 지워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지우고 나니까 딱 1개의 답이 남았고 그것을 답으로 선택했다. (이 문제는 실제로 이렇게 풀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문제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6번 문제,,, 공해전이 나와서 기억을 더듬었는데 정확하게 3번과 해설이 맞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고려시대 ‘전’시리즈가 마구 기억이 났는데 정확히 각 전이 무엇과 연관되어있는지 기억이 안 났다. 분명히 봤건만,,, 역시나 독서를 통해서 생길 수 있는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바람에 11회독을 했음에도 그 부분에 대한 기억이 내 머리 속에 흡수되지 않았다. 1,3,5는 확실히 답이 아니었고 2번과 4번이 고민되었는데 최종적으로는 4번을 공해전과 관련된 내용을 답으로 했다. (결국 틀렸다,,, 공해전을 정확히 알았으면 이걸 지우고 2번을 답으로 할 수 있었는데,,,)

다음으로 근현대사 시험을 쳤다, 근현대사는 05수능, 06수능 때 각각 1개를 틀리고 만점을 받아서 1등급을 받은 나의 주력과목이었다. 내가 워낙 역사를 좋아해서 선택한 과목 중 하나,,, 무난하게 풀었는데 10번 문제가 헷깔렸는데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국권 피탈 이전에 독립운동을 하지 않은 거 같았고 그런데 또 ㄷ에 나오는 경학사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없는 것이 거의 확실해서리,,, 내가 알고 있는 정확한 지식은 경학사는 블라디보스토크, 즉 연해주 쪽에 없는 것이 90%이상 확실했는데 나는 그 걸 그 쪽에 있다고  생각하는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 때 왜 그랬는지 알 수가 없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정말 귀신이라도 씌인 것 같다. ㅡㅡ;

다음 경제를 쳤다. 경제,,, 나랑 가장 안 맞는 과목이자 공부를 해도해도 극복할 수 가 없었던 과목,,, 경제는 선지를 다 읽고 내니까 속발음을 하는 내가 시간 안에 풀기가 버거워서 풀면서 답이 나오면 바로 체크를 하고 넘어갔다. 예를 들어 답이 3번이 확실하면 선지 4번과 5번은 확인 안하고 넘어가는 식이었다. 그렇게 17번까지 풀고 나니까 시간이 적절하게 맞는 거 같았다,,, 그런데 18번 문제를 보는 순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투자수익률 구하기?? 이건 뭐 경제도 아니도 수학도 아니여~~(개그콘서트도 같기도 패러디 ㅡ.ㅡ;) 이런 문제가 나오다니 황당했다,,, 수학에 안 그래도 약한 내 머리는 계속 버벅거렸다. 결국 풀지를 못하고 19번으로 넘어갔다. 19번은 2개를 두고 고민했는데 더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답을 내렸고 20번은 풀 수 있었다. 다시 돌아서 18번을 계속 풀었지만 도대체 어떻게 식을 짜야지 수익률을 구할 수 있는지 내 머리로는 알 수 가 없었다. (이 문제는 내가 과외를 하면서 학생에게 경제과목의 어려움에 대해서 가르쳐주려고 말해줬는데 과외를 할 때 그 문제를 또 풀지 못했다. ㅡㅡ; (즉석에서 했는디,,,) 그런데 성적이 하위권이었던 과외학생이 그 문제를 신기하게 푸는 것이었다. 결국 경제에 대한, 아니 그런 문제에 대한 나의 능력이 부족했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이제 마지막 남은 과목은 사회문화였다. 이번에야말로 사회문화의 말장난에 속아넘어가지 않으며 표분석 문제를 완벽하게 정복하겠노라 다짐했다. 쭉쭉 풀어나갔다. 5번 문제를 보는 순간 피식했다. ‘평가원 또 말장난 시작이군!! 이번에는 안 낚인다~’ 정말 안 낚이고 그 문제는 풀 수 있었다. 그리고 계속 풀어 나갔는데 10번의 어떤 아저씨 경력 나오는 문제에서 3번과 5번이 헷깔렸다. 3번은 대학교 동문회는 자발적 결사체다, 5번은 종친회는 공동 사회다 라고 하는 것이었는데, 둘 다 맞는 거 같았다,,, 5번의 문장이 좀더 답 같았다. 대학교 동문회는 비공식 조직 같았다. 그래서 5번을 답으로 했다. (결국 틀렸다 ㅡㅡ; 이 문제에 대한 논쟁이 좀 있었는데 물론 좀 아리까리했지만 3번이 답임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계속 풀어나가는데 14번의 표해석 문제에서 또 막혔다. 나름 열심히 해서 풀었다. (결국 또 틀렸다 ㅡㅡ; PSAT문제도 열심히 풀고 6월, 9월 사회문화 표분석 문제를 완전 해부를 했건만 나의 뇌가 아직 그런 쪽으로는 발달이 덜 되어있었다.)

뒷 장으로 가니까 또 해석문제인 18번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보자 당황했다. 1번 선지부터 인구밀도라는 것이 나왔다. 인구 밀도 계산을 어떻게 하는지 생각이 안 났다 ㅡㅡ; 아놔 이런 걸 왜 문제에 내냐고,,,-0-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선지 5번부터 거꾸로 봤다. 선지 5번을 보니까 ‘1960년대 이후에 경기▪인천 지역의 인구는 매 10년마다 200만명 이상씩 증가하고 있다’라는 문장이었는데 딱 보니까 수도권 지역 인구가 매 10년마다 그렇게 증가하고 있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아싸~ 평가원 ㅋㅋ 수험생 골릴려고 일부러 1번부터 밀도 구하는 것처럼 힘든 거 내서 괴롭힐려고 했구나, 이렇게 5번에 답이 있는데,,,ㅎㅎ’ 하고 즐거워했다. (그러나 그 문제의 정답은 바로 밀도인 1번이었다 ㅡㅡ; 그래서 오답확인해보니까 수도권 지역이라 함은 경기▪인천지역과 더불어 바로 서울을 포함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평가원에서는 일부러 서울지역과 수도권 지역을 나누어서 이렇게 나누어서 혼란을 준 것이었다,,, 메가스터디 정답률이 25%로서 이 문제는 07 사회문화 최악의 문제로 기록되기도 했다. 내가 한 5번을 한 사람이 무려 25%나 되었다. 역시 나같이 경기▪인천 지역만 수도권으로 생각하고 그냥 표보고 단순하고 분석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었다,,, -0- 서울과 합쳐서 계산해야 하는 것이었는데,,, ㅡㅡ

이 글을 보고 사회문화를 선택하시려는 분들에게 말씀 드린다, 바로 사회문화란 이렇게 말장난의 과목이다, 사설과 평가원, 수능은 전혀 질이 다르다, 그리고 평가원과 수능 사회문화를 잘 치기 위해서 따로 대비할 수 있는 교재도 없다. 그저 평소에 글을 꼼꼼하게 보고 이해하는 습관을 계속 들으시면 될 꺼 같다. (말은 쉽다 ㅠㅠ) 말장난에 자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주저 없이 선택하시라, 하지만 자신있다고 생각했던 나도 이렇게 당해서,, 어떻게 뒷감당은 잘 알아서 하시길,,,-0-)

이렇게 사탐까지 모두 시험을 마치고 나니까 속이 후련했다,,, 시험이 다 끝난 느낌이었다,,, 아침에 언어영역을 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사탐까지 다 치다니,,, 시간이 정말 빠르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복도에 나와서 창문을 열고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같은 시험장에 있던 학교 후배K 랑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후배 K는 제 2외국어를 선택하지 않아서 시험이 다 끝났다고 너무나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동안 밥먹으면서 꾸준히 보아온 한문을 만점을 받아야만 하는 사명감(?)을 띄고 있었다.

다시 교실로 들어와서 한문시험을 쳤다. 문제들이 내가 본 대성기출 한문 15회분 450문제와 자습서, 그리고 EBS 수능특강에서 많이 나온 거 같았다. 역시나 내가 처음 본 지문들은 그 동안 쌓은 내공과 더불어 한자를 통해서 추리하면서 해석해 나가서 풀었다. 2번을 검토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았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만점을 받기 위해서 검토를 하고 나니 종이 울렸다.

이렇게 07 수능시험이 끝이 났다,,, 드디어,,, 드디어 끝이 난 것이었다,,, 해산하라는 감독관 선생님의 말씀을 들리고 나서 모든 학생들이 밖으로 나섰다. 나는 잠시나마 책상에 계속 앉아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끝이 났구나,,, 드디어,,,’ 한동안 책상에 앉아서 그저 멍하게 가만히 앉아 있었다,,, 교실을 떠나려고 일어나니 친구가 찾아왔다. 그리고 친구와 함께 고사장을 나섰다.

벌써 3번째 보는 수능 친 이후의 밤이었다,,, 오늘 밤은 유달리 아름다웠다,,, 학교를 내려가서 운동장을 걸으면서 나와 친구는 큰 말을 주고받지는 않았다,,, 나는 하늘을 보면서 감탄하는 말만 계속 연발했다,,,\'세월 참 빠르다,,, 벌써 3년이나,,,지나다니,,,\' 그 날 밤의 별은 더욱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3번의 기회를 썼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죽도록 노력하여서 나의 머리의 한계까지 오늘 이 자리에서 모두 왔노라 하고 자신 있게 하늘을 향해서 말할 수 있었다,,,

입구 쪽에 가니까 선생님들이 계셨다,,, 3학년 부장 선생님께서 시험을 잘 쳤냐고 물으셔서 나는 싱글벙글하면서 대답을 드렸다. “수학시간에 ‘그분’이 오셨어요~!”라고,,, 그러자 3학년 부장 선생님과 옆에 계시던 다른 선생님들까지 모두 웃으셨다. 3학년 부장 선생님은 나의 모의고사 점수를 계속 봐오시면서 내가 항상 수학 때문에 너무나 힘들게 고생했다는 것을 잘 아시는 분이시기에 그 대답을 들으시고는 웃으시면서 “이제 고려대 갈 수 있겠구나, 축하한다, 채점하고 나서 연락하거라.”라고 미리 기분 좋은 말씀을 해 주셨다.

입구를 나와서 가족들과 만나서 바로 집 앞에 있는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그래서 오늘 수학시간에 있었던 신기한 일을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놀라시면서 수학 시험을 친 시간대가 언제였냐고 물으셨다. 그래서 시간대를 말씀드렸더니 어머니가 “그 시간에 절에서 열심히 불공을 드렸단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소리를 들으니까 기분이 묘했다. 어머니는 불교신자가 아니신데 오늘 수능 때문에 우리 지역에 있는 절에 가셔서 TV에 나오는 부모님들처럼 그렇게 불공을 드리셨다는 것이었다. 점심 전까지 그러셨다고 했는데 시간대가 딱 내가 수학을 풀다가 갑자기 머리가 팍 트였을 때의 시간과 거의 비슷한 것을 알고는 나도 신기했고 우리 가족들도 신기해하였다.

고기를 먹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나눴다. 나는 이번 수능 대박이라고 자신있게 말씀을 드렸다. 비록 수학 1개는 찍었지만 나머지를 완벽하게 풀었는 느낌이 본능적으로 들었기에 이번에 수학 점수는 96점 아니면 운 좋으면 100점일 꺼 같다고 말씀드렸다. 부모님은 내가 항상 수학적 머리가 안 좋아서 수학 때문에 고통을 받으시는 걸 알고 계셨는데 이 말을 들으시고는 매우 기뻐하셨다. 다른 과목도 무난하게 다 잘 한 거 같다고 말씀을 드렸다.

식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서 또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컴퓨터를 켜고 메가스터디에 접속했다,,, 벌써 이렇게 앉는 것도 3번째,,, 올해가 마지막,,, 이라고 생각하니 후련하면서도 뭔가 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강남대성학원생들이나 다른 좋은 대학을 들어간 학생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고2 때까지 잘했던 ‘원래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고 나에게 주어진 그릇을 파괴하기 위해서 하늘이 감동을 받으실 정도로 노력을 했다고 늘 자부했었다,,, 그리고 이제 그 노력의 결과가 한방에 고려대 법대로 이어질지를 알아보는 일만 남아 있었다,,,

언어영역은 답을 수험표 뒤에 적어오지 못해서 나의 기억력으로 체크를 했어야만 했다. 그런데 작년에도 경험을 해봤지만 수능시험장에서는 초인적인 집중력이 발휘되었기 때문에 자신있게 문제를 보고 기억을 더듬어서 체크를 하였다. 60번 까지 체크를 다 하고 나서 채점하기 버튼을 눌렀다,,, 이번에도 역시 한 번에 볼 수 없어서 손으로 점수 쪽을 가렸다. 화면이 바뀌고 점수가 뜬 거 같았다,,, 과연 몇 점일지 궁금했다,,, 뒤에서 부모님이 지켜보고 계셨다,,, 떨리는 마음으로 손을 치웠다,,, 점수는,,, 바로 97점이었다,,,!!

나는 이 순간 너무 기뻐서 방을 방방 뛰면서 미친듯이 날뛰었다. 분명히 난이도가 있었는다고 생각했는데 97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았으니 고려대 법대를 갈 수 있을만한 언어점수를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3 2학기 때부터 꾸준히 독서를 해온 나의 이 노력들이 결코 헛되지 않음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판타지와 무협을 광적으로 읽은 얘들이 언어를 잘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한 독서,,, 결국 내 예상은 적중했고 현실이 되었다,,, 너무나 기뻤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이제 나를 한이 맺히게 만든 수학을 채점하게 되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수학에 대해 할 것이 없었고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더 이상 안되는 것은 나의 수학에 대한 그릇과 능력의 한계라고 생각했다,,,수험표 뒤에 적어온 대로 하나하나 입력시키고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 커서를 움직여서 채점하기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역시 왼손은 모니터를 가리고 있었다,,, 화면이 바뀌었다,,, 부모님이 나보다 더 초조해하셨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스스로 수학에 대한 한을 풀기 위해서 노력했는지 아시는 부모님께서는 혹시나 이번에도 수학의 결과가 안 좋으면 내가 얼마나 크게 좌절할지는 노심초사하시는 듯하였다,,, 왼손을 치우고,,, 한 번에 점수란을 보았다,,, 그냥 확인하는 거 이상하게 한 번에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화면에 뜬 점수는 바로,,, 96점이었다,,,!! “해 냈다, 해냈어!! 와하~”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면서 방을 방방 뛰었다,,, 방에 접혀져 있던 이불에 눕고는 미친 듯이 환호성을 질렀다,,, 나의 수학에 대한 3년의 노력이 드디어 결심을 맺는 순간이었다,,, 고려대 법대를 가기 위해서는 100점 내지 96점을 받아야만 했는데,,, 100점은 아니었지만 96점을 받은 것이었다,,, 너무나 기뻐서 내 눈에는 눈물이 글썽였다,,, 찍은 문제가 1개가 틀렸지만 역시 스트레이트로 내가 다 풀었던 문제들이 다 맞았다. 부모님도 너무 좋아하셨다,,, 내가 그토록 고려대 법대를 가고 싶었고 또 수학을 정복하기 위해서 중학교 수학부터 다시 파면서 피나는 노력을 하신 것을 알기에 나의 이 기쁜 감정을 같이 나누실 수 있었다,,,

이제 세 번째 과목인 외국어 영역을 채점할 차례가 되었다,,, 여기에서 만약 만점을 받는다면,,, 고려대 법대가 현실이 되는 것이었다,,, 제발,,, 이루어져라,,, 그렇게 빌며 수험표에 적은 답을 그대로 체크를 하였고,,, 채점하기 버튼을 눌렀다,,, 아버지가 먼저 보신다길래 나는 고개를 돌렸다. 채점하기 버튼을 눌렀는데 화면이 바뀌는 소리가 났다. 그런데 아버지가 아무 반응이 없으셨다. ‘혹시,,,? 망했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스쳐 지나갔다, 궁금해서 바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렇다,,, 바로 100점이었다,,, 아버지는 놀라셔서 순간 말을 잊으신 것이었다,,, 외국어 영역 100점,,, 꿈만 같은 점수가 현실이 되었다,,, 맨투맨을 보고 문제들을 항상 내 머리로 스스로 풀려고 노력했었던 그 수많은 시간들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게 결실을 맺은 것이었다,,,!!

미친듯이 날뛰다가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언수외 점수를 계산해보았다. 293점,,, 언수외가 200점이 안될 때가 엊그제 같은데,,, 꿈만 같은,,, 드디어 고려대를 갈 수 있는 언수외 290점대를 받게 된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드디어 나의 오랜 꿈이 현실로 다가 오고 있음을 가슴 속으로 느끼게 되었다,,, 진인사대천명 이라는 말이 맞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사탐과 외국어였다,,, 사탐이 6월처럼 잘 나와 주기만 한다면 고려대 법대를 가 갈 수 가 있었다, 아니 왠지 사탐이 좀 망해도 언수외가 저정도기에 고려대 법대를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국사부터 채점을 해나갔다,,, 그리고 국사는 채점하기 버튼을 누르고 바로 점수를 봤다,,, 44점,,, 순간 털석했다,,, 반수를 포함해서 교과서는 무려 15회독이나 꼼꼼하게 정독을 했건만,,, 또 2개를 틀렸다,,, 허탈했다,,, 역시 독서를 통해 길러지는 인지능력이 모자라면 많이 읽는 것도 큰 의미가 없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국사는 잘 하는 얘들이 많아서 1등급이 되지는 않을 꺼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 3과목이 남아 있었다,,, 힘을 내서 근현대사를 채점했다,,, 나의 주력 과목,,, 당연히 50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채점하기 버튼을 누르고 점수를 확인했다,,,

45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어떻게 이럴수가,,,,’ 믿었던 근현대사를 망치는 일이 발생했다,,, 블라디보스토크 그 문제를 틀렸을 뿐만 아니라 시장개방이 나왔던 근현대사 문제도 아니고 경제 문제도 아닌 그런 2점짜리 문제도 틀려서 45점을 받은 것이었다,,, 나의 주력 과목은 역사 과목이 이렇게 망하자 내심 많이 불안했다,,, 다음 과목은 경제였는데,,, 사실상 기대를 하지 않는 과목이었다,,, 9월이나 10월에도 30점대였고 공부를 해도 내 머리로는 도저히 되지가 않는 과목이었다,,, 별 기대를 가지지 않고 채점을 했다,,, 45점,,, 잘 친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0- 이럴수가,,,사실 좀 황당해했다,,, 고려대는 사탐을 백분위 쓰기 때문에 지금의 이 어정쩡한 점수들로는 백분위가 많이 깎일 꺼 같은 느낌이 들었다,,, 1등급이 하나도 없을 꺼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 고려대 법대를 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회문화에 기대를 걸고,,, 채점을 하였다,,, 38점,,, 할 말을 잃었다,,,

거실에 나와서 쇼파에 누워서 그냥 눈을 감았다,,, 부모님이 더 안타까워 하셨다,,,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사탐을 1등급을 하나도 받지 못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눈을 감고 쇼파에 누워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내가 그렇게 갈망했던 고려대 법대를,,, 사탐을 망치면서 못 간다는 사실을 인식했을 때 나는 이미 온 몸에 힘이 빠졌었다,,,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너무 괴로웠다,,, 그냥 눈을 감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게 죽도록 노력했건만,,, ‘능력이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06수능이 끝나고 친구들과 성적표를 받으러 갔을 때 3학년 지도실에서 영어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릇론’이 생각났다,,, ‘나의 그릇은 늘려도 늘려도 이게 다였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 20분 가까이를 있었다,,, 보다 못한 부모님께서 언수외를 잘 쳤으니까 고려대 법대가 될 지도 모른다는 희망적인 말씀을 해주시면서 남은 제 2외국어 한문을 마저 채점해보자고 말씀을 하셨다,,, 나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일어나서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한문을 채점하였다,,,

한문을 채점해보니 50점 만점이 나왔다,,, 그 동안 돌솥비빔밥을 즐기면서, 밥알을 입에 씹으면서 계속 한문을 공부한 그 노력들이 헛되지 않고 퍼펙트한 점수로 나와서 너무 기뻤다,,, 부모님과 같이 점수를 정리해 보았다,,, 언어 97 수학 96 외국어 100 = 언수외 293점, 국사 44점, 근현대사 45점, 경제 45점, 사회문화 38점 = 사탐 172점, 총점은 465점이었다. 11월 마지막 중앙 모의고사에서 468점을 받았고 9월 모의평가에서 452점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 딱 내 실력에 맞는 점수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너무 아쉬운 것은 사탐을 망쳤다는 사실이었다,,, 고려대 법대를 가기가 에매모호한 점수,,, 아니 안 될꺼 같은 사탐백분위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르비에 들어가서 동향을 살펴보았다,,, 의견들이 분분해서 또 다시 각 과목 난이도에 대한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몇 일 뒤에 메가스터디나 청솔이나 각 사이트에서 커트라인 추정을 할 것이므로 그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래서 그냥 컴퓨터를 끄고 바로 누워서 잠을 잤다,,, 역시나 쉽사리 잠은 오지 않았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고려대 법대가 물거품이 된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고려대 법대라는 곳은 언수외도 퍼펙트, 사탐백분위도 퍼펙트 해야지만 갈 수 있는 그런 곳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탐 백분위가 암울하게 나올꺼 같은 나의 사탐 점수들을 보고 괴로웠다,,, 하지만 나는 정말 하늘에게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최선을 다 했고 주어진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게 바로 나의 그릇의 한계라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까 노력을 해도 능력의 한계 때문에 고려대 법대를 갈 수 없었다는 사실로 인해 우울했던 마음이 편안해 졌다,,, 진정 죽도록 노력이라는 걸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인정’이라는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 07수능의 하이라이트, 수리 나형 등급 컷

몇 일이 지나고 나서 각 기관에서 등급컷을 발표하였다,,, 청솔은 사탐을 처음에는 낮게 잡다가 다시 높게 잡는 일을 냈는데 청솔대로 하면 나의 사탐등급은 3323이었다 ㅡㅡ; 청솔 등급컷을 보고 나서 내가 사탐을 얼마나 못 쳤는지 실감을 할 수 있었다,,, 언어영역 등급컷은 추측이 분분했는데 94점까지 잡는 곳도 있었고 96점까지 잡는 곳도 있었다. 분명히 어려웠다고 생각했는데도 05수능과 등급컷이 비슷할까? 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하지만 조사기관들이 다 자기들 나름대로 정확하다고 제시했으니 모를 일이었다,,,

문제는 이제 수리 나형 등급 컷이었다,,, 청솔과 메가스터디가 92~93점으로 추측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쉬웠나? 05수능이랑 비슷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추측이 꽤 높게 잡혀서 사실 좀 당혹스러웠다,,, 그렇다면 나의 수학 96점의 의미가 좀 퇴색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외국어 영역은 메가스터디가 94점으로 잡다가 95점까지 올렸고 다른 곳들도 95점을 기준으로 잡은 것으로 기억한다,,, 9월 보다 쉬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9월의 외국어 1등급컷이 94였는데 수능도 대충 비슷할 꺼라고 생각했는데 더 높게 잡히니 좀 어이가 없었다,,,

수능 성적표가 나오기 전까지 하루 일과는 오르비 폐인짓을 하는 것이었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글을 챙겨 읽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청솔학원 유료결제를 통해서 가채점 점수를 통해서 내가 어느 정도까지 갈 수 있는지를 가늠해 보았다,,,


▲ 청솔학원 결제를 통해서 나온 가채점 원점수 기준 대학지원 가능표
예상대로 고려대 법대는 무리였고 대신 고려대 정경대학이 가능하다고 나왔다. 물론 가채점 기준으로는 +4.33이었나 성적표가 뜨고 백분위가 바뀌고 또 모의지원 경향이 반영되면서 고려대 정경은 청솔기준으로는 -0.71이 되었다,,,-0- 고려대 법대를 갈 수 없다면 차선책으로 고려대 정경을 가고 싶었다,,, 고려대 캠퍼스를 너무나 밟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한 달이 채 되지 않아서 성적표가 나왔다,,, 등급컷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먼저 언어 1등급컷이 95점이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05수능 1등급컷인 94점보다 높았다,,, 그 점수를 보자마자 떠오르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올해 얘들 왜 이렇게 공부 잘하지?? ㅡㅡ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다음으로 수리 나형 등급컷은 무려 96점이었다,,, 이 등급컷을 보고 나는 너무나 놀라고 황당해했다,,, 분명히 9월 모의평가 보다 어려웠고 변별력을 주는 문제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커트가 똑같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9월 모의평가 수리 나형 만점의 표점이 142였는데 수능 수리 나형 만점의 표점이 140이었다. 수능 수리 나형이 9월보다 더 쉬웠다는 말이었다,,,

기가 막혀서 오르비를 통해서 자료를 보면서 말이 안 나왔다,,, ‘삼수까지 한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분석해봤을 때 분명히 05수능과 비슷하고 06수능보다는 쉬웠는데,,, 그리고 06년 9월 모의평가보다는 훨씬 어려웠는데 어떻게 이런 등급컷이 나올 수 있지?? 얘들이 다 수능 때 가서 초싸이언이 되었나??’ 하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이후에 오르비에 글을 통해서 또 나름대로 분석을 해보니까 이과 수리 나형학생들의 영향이 매우 큰 것이 한 요인이었다.

수학을 하는 사람은 세 부류로 나누어지는데 문과 수리 나형, 이과 수리 나형, 이과 수리 가형으로 나누어진다. 이과 수리 나형은 이과 수리 가형 머리가 되지 않는 학생들이 치는데 이상하게 이과에서 수리 나형을 치는 학생들 중에서 수리 나형 점수가 잘 나오는 경우가 우리 때도 그랬고 재수 때, 그리고 삼수 때 학교 후배들을 봐서도 그렇게 정말 많았다. 아마 그 학생들의 수학적 머리는 가형에서 요구하는 머리 수준은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수리 나형에서 요구하는 수준은 조금 넘어서 그런 것 같다. 허나 이과에서 문과로 넘어온 나는 둘 다 못했었고 죽도록 노력을 해서 1등급을 받았으니 예외도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0-) 또 놀라운 것이 외국어 영역 1등급 컷이 96점이라는 것이었다,,, 9월보다 2점이나 높았다,,, 이렇게 외국어 커트가 높아버리니까 할 말이 없었다,,, 외국어 만점의 가치가 퇴색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사탐등급을 봤다,,, 국사가 47점이 1등급이고 43점이 2등급커트였다. 다행히 3등급이 아닌 2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근현대사는 48점까지가 1등급컷이었고 44점까지가 2등급 커트였다. 다행히 국사처럼 2등급을 받았다. 경제가 제일 의외였다. 백분위 95로 2등급을 받은 것이었다. ㅡㅡ; 공부를 해도 안되는 과목이라서 큰 기대를 안 했는데 백분위를 보니까 경제가 가장 잘한 사탐과목이었다,,, (이래서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회문화는 38점으로 3등급, 백분위 87점이었다,,, 42점이 1등급 커트였는데 4점 차이에 엄청나게 학생들이 몰려 있었다,,, 2점 짜리 2개 낚시에만 안 걸렸어도 1등급을 맞을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한문은 다 맞아서 백분위 98에 표준점수 70을 얻으면서 당당하게 1등급을 받았다.


▲ 삼수를 끝으로 마지막으로 치른 07수능 성적표, 언수외 백분위를 합산해보니까 9월 모의평가랑 똑같았다, 언수외를 잘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사탐점수가 떨어지는 일을 9월 모의평가와 수능을 통해서 맛볼 수 있었다. 나의 뇌가 언수외에 길들여져서 그런 것이었을까? 그렇다고 사탐공부를 소홀히 한 것도 아닌데,,,-0- 아직도 그 이유는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수학을 미친 듯이 하느라 뇌구조가 좀 바뀌어서 그러지 않나 싶다 ㅡㅡ; (그런가??)

■ 제 6교시 원서영역

성적표가 나온 이후로 유료배치표를 결제하고 진학사 모의지원까지도 결제해서 나름대로 분석을 하였다. 성적표가 나온 이후 지원하기 전까지 나의 하루 일과는 하루 종일 진학사 모의지원 확인 + 오르비질(수능 끝나고 나서 들어오기 바란다, 그 전에 들어와서 중독되면 당신의 인생은 GG)이었다. 수시로 확인하면서 진학사 모의지원을 살펴보았다. 가채점으로 했을 경우에 나의 고대식 점수는 886.31이었는데 성적표가 나와서 사탐 백분위가 바뀌면서 885.82로 떨어졌다,,, 그러니까 진학사에서 고려대 정경 모의지원 등수가 확 떨어졌다,,,이 조밀한 0.5점 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현역 때는 종이배치표만 믿고 갔고 두 번 째 수능 때에는 온라인 배치표를, 세 번 째 수능 때에는 온라인 배치표와 더불어 이렇게 모의지원이라는 것도 알게 되어서 하고 있으니 수능 후 지원하는 걸 연구하는 실력도 해를 거듭할수록 치밀(?)해지는 것 같았다,,,

최종적으로 분석을 하고 각 군마다 낼 곳을 정하였다. 온라인 배치표를 종합해보면 고려대 정경이 평균 -0.5점이 모자랐다고 나왔다.  고려대 법대를 수학을 1개 더 맞았다면 888.93점이 되어서 고려대 법대 문 닫고 들어가는 것을 노리고 썼겠지만 사탐 대박도 아니고 수학 100점도 아니라서 쓸 수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논술을 잘 봐서 역전을 좀 했기 때문에 이 점수였다면 고려대 법대 3차 전화찬스 거의 끄트머리를 통해서 들어갈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입시결과 모음 사이트인 유니루 표본(구라로 올리는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눈에 보인다. 마치 오르비에 진짜같은 낚시 수기 올리는 것처럼) 에 888.89번님이 논술을 잘 쓰셔서 고려대 정경을 썼던 나 정도로 역전을 하고 된 케이스가 있기 때문이다. 수학 1등급 컷이 96점이나 되어서 고려대 법대를 가려면 이번 시험에서 무조건 수학을 100점 받아야 했다,,, 아니면 사탐 백분위가 100 99 95 정도로 대박이 나던지,,, 안전하게 들어가려면 국사 초판 교과서를 봐서 낭패를 본 국사 1문제를 맞고 수학을 100점 받아야 했다. 이러면 고대식 점수가 490.13이 되었다. 어쨌든 바로 이렇게 높은 곳이 고려대 법대였다,,, 최종커트는 0.5%였다. 886점대에서 되신 2명이 있었는데 인터넷 표본상 그 진의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그 2명을 제외하면 최종커트가 0.5%정도 되었다.)

다른 차원에서는 정경보다 낮은 과를 쓰거나 내가 목표로 하는 법대로 가려면 가군의 성균관대 법대를 써야했다. 게다가 언수외 성적이 성균관대 삼성장학금 기준을 충족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4년 장학생으로 갈 수 도 있었다,,, 하지만 고려대라는 학교를 포기하기 싫었다,,, 그래서 고려대를 선택했다,,, 정경을 선택한 이유는 일단 점수상으로는 간당간당 했으나 어짜피 비법대로 가게 될 것 차선책으로 내가 좋아하는 쪽으로 가고 싶었다. 정경 안에는 경제와 행정과 통계와 정치외교학과가 있었는데 이 중에서 정치외교학과를 가려고 했다.

만약 비법대를 가서 법대 쪽 공부를 하게 된다고 가정했을시 학점은 포기해야 했지만 그래도 나름 관심있는 쪽으로 가야지 덜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0.5점 정도로 온라인 배치표들은 내다보았으나 논술이라는 변수가 있기 때문에 그 변수를 통해 역전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원서를 내기로 결심을 하였다. 그리고 진학사 모의지원을 보니까 어떻게 거의 끄트머리로 될 듯한 그런 등수를 맞았었는데 273등으로 기억한다, 171명 모집이었으니까 예비 102등이었다.

06수능 때 96번까지 빠져 나갔지만 올해는 서울대가 정원을 줄이고 또 제도가 바뀌는 마지막 해라서 학생들이 대학이 그냥 걸터앉아서 수능을 다시 보려고 해도 반수를 많이 하는 쪽으로 바뀌어서 추가합격자 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래도 왠지 고려대 정경은 논술을 잘 쓰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진학사 모의지원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참고는 하였다. 정경은 오르비에서도 그랬고 진학사 모의지원을 통해서도 드러났지만 항상 대폭발이 예상되는 학과 중 하나였다. 정경 밑으로 언론과 국제어문, 인문, 국제학부 등이 있었는데 이곳은 모두 다 되는 점수였다. 비록 법대는 아니고 정경이 간당간당한 점수였지만 그 밑으로의 과는 고려대를 갈 수 있는 점수가 나와서 고려대 법대가 좌절되었을 때의 그 아픔을 치유할 수가 있었다.

이제 나군을 어디에 쓸 것인가가 문제였다. 일단 경제랑 경영은 싫었고 그래서 서강대 법대를 해보니까 되는 점수였다. 그런데 서강대 법대는 되어도 가기가 싫었다,, 너무 소규모였고 학교에서 밀어주지도 않았기 때문에 만약에 된다고 해도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서강대에서는 더 이상 쓰고 싶은 곳이 없었다. 눈을 돌리니까 서강대 보다 높은 서울대가 눈에 들어왔다. 온라인 배치표를 통해서 이리저리 해보니까 서울대의 낮은 과는 될 수 있을 꺼 같았다, 농경제사회학부랑 소비자아동학부, 그리고 교육학▪국민윤리교육과군이 있었는데 모두다 점수가 부족했다. 0.X점 차이로 말이다,,, 그런데 이때까지 한 번도 서울대 연고대 입시를 치러보지 않아서 몰랐는데 알고 보니 서울대는 내신 100점, 수능 100점으로 계산하고 또 논술과 면접이 각각 25점 만점으로 주어져서 0.X점 차이로 떨어지고 붙는 사례가 허다하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에 -0.X점 이런 걸 보고 ‘될꺼 같네’라고 생각한 나는 이 사실을 오르비를 통해서 알고 다소 당혹스러웠다 ㅡㅡ;;

고려대 정경도 될 꺼 같았고 서울대도 이 셋 중에 하나를 쓰면 될 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논술과 면접이 있었는데 거기서 잘 하면 역전이 가능할 꺼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과를 보니까 교육학▪국민윤리교육과군이 제일 나았다. 법공부를 위해서 법대를 가지 못하는 지금 상황에서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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